[410호 이한주의 책갈피]

오래전부터 친구 사이인 늙수그레한 두 명의 농부가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으로 함께 차를 실컷 마시고 한 골방에서 같이 잠을 자려고 했다는 거야. 그런데 한 친구가 이틀 전에 다른 친구의 노란 구슬 줄이 달린 은시계를 보았지. 예전에는 그런 시계가 없었는데. 그는 도둑이 아닌 데다 아주 정직하기까지 했고, 농민들 수준으로는 전혀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야. 그런데 친구의 시계가 너무나 마음에 들고 멋져 보여서 그만 참지 못했던 걸세. 그는 칼을 집어 들고 친구가 몸을 돌리는 사이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눈대중을 하고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성호를 그었지. 그리고 혼자서 비통한 기도를 올린 거야. ‘하느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소서!’ 그는 양을 죽이듯 단칼에 친구를 베어 버리고 그에게서 시계를 뺏었다네. (429쪽)

도스토옙스키에게 인간은 친구의 은시계를 빼앗기 위해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다. ‘친구’ ‘살인’이라는 단어로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면, 그의 인간관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비통한 기도를 올리며 친구를 죽일 수 있는 인간에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기도하라 가르쳐주셨다. 이 기도를 가르쳐주셨을 때 예수님은, 시험을 뿌리치고 악에서 벗어날 의지가 있는 인간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악에 투항하면서도 용서를 기도한다. “용서해 주소서” 기도하며 악을 행하는 인간, 죄라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용서받을 줄 믿는 인간에게 신앙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칼이 되기도 한다.

 

최진영 작가의 소설집 《쓰게 될 것》(안온북스) 맨 앞에 있는 표제작은 “나의 할머니는 전쟁을 세 번 겪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식이 다섯 명인, 화자의 할머니는 세 번의 전쟁을 겪으며 세 명의 자식을 잃었다. 섭이·필이·은이는 죽고 곤이와 홍이는 살았는데, 홍이의 딸이 화자인 유나다. 한국 사람 이름이 나와서 한국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줄 알았으나 소설 속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폭격 장소나 군인 위치, 구호품 배급 등의 정보를 나눈다. ‘핸드폰을 사용하던 시대에는 한국에 전쟁이 없었는데…’ 이런 의문이 들었을 때 비로소, 작가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을 사용해 지금 벌어지는 어떤 전쟁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뒷부분에 나오는 “신을 믿는 자들은 전쟁을 구원이라고 했다. 더 많은 살상이 승리이자 착한 행실이라고 주장했다”(37쪽)라는 구절에서 이 소설의 전쟁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고, 소설에 나오는 섭이·필이·은이·홍이·유나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10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신명기 25:17을 인용하며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연설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자신들의 싸움은 3천 년 전 여호수아가 시작했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며 가자지구 공습을 독려했다. 이렇게 확전되었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또 한 해를 넘겼고, 다시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전직 목사이며 극우파 정치가인 마이크 허커비를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 성경을 인용하며 폭격을 정당화하고, 학살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4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들은 절멸해야 할 아말렉일 뿐이다. 이 잔인한 현실에서 작가는 전쟁의 참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는 이름들을 붙여주고, 어린 유나의 시선으로 전쟁을 증언한다. 연속되는 폭발에 놀라고, 폭격으로 직장을 잃고, 길에서 시체를 보는 사람들은 섭이·필이·은이다. 이런 이름으로 부르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우리 할머니들이 겪은 전쟁이 된다. “내일도 살아 있을까? 소풍 가기 가장 좋은 날은 언제나 오늘이다”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유나 엄마, 김은홍이란 이름을 붙여주면, 이름과 함께 어떤 얼굴이 떠오른다. 이 얼굴은 그들이 아말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혹 그들이 아말렉이라 해도, 아말렉 역시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황여정 작가의 장편소설 《숨과 입자》(창비)에는 한국 소설에서 보기 드문 젊은 여성 그리스도인이 등장한다. 화자의 동생이자 또 다른 주인공인 도이영은 교회 기도원 간사다. 7년 동안 한 번도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은 그녀에게 목사가 직접 제안한 일이다. 이영은 종교 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기도원에 방문한 영화감독 길병소를 만나고 이 인연으로 인터뷰를 한다. 길병소는 원했던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못했지만 이영과 인터뷰했던 영상을 그녀에게 보내준다. 이영은 이 영상을 제3자 입장에서 보다가, 자신을 기독교인이 되도록 이끌었던 어떤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영이 어느 날 교회에 가고 기독교인이 된 것은 그냥 어쩌다가 아니었다. 교회를 향한 의심과 회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음에도 계속 교회를 다녔던 것은 그저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영은 가닿고 싶었다. 가닿을 수 있었는데도 결국 가닿지 못하고 놓쳐버린 승아에게. 뒤늦게라도. 그래서 신에게도 가닿고 싶었던 것이었다. (210쪽)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상》(열린책들)에서 므이쉬킨 공작은 어떤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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