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호 이한주의 책갈피]
자주 쓰는 문장은
휴대폰 자판이 알아서 기억해준다
감사한 마음 전하고자
‘고’만 쳐도 ‘고맙습니다’
완성된 문장이 마중 나오지만
그 마음
너무 쉽게 증발되는 게 싫어
ㄱ ㅗ ㅁ ㅏ ㅂ ㅅ ㅡ ㅂ ㄴ ㅣ ㄷ ㅏ
전해지지 않아도
전하고 싶은 마음 담아
한 자 한 자 꾹꾹 누른다
- 〈고맙습니다〉 전문
이 시를 읽고 핸드폰 자동완성 기능을 해제했다. 같은 문장이라도 자동으로 완성된 문장과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은 문장은 다른 거라고, 보이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딸에게 시를 읽어주며 이런 얘기를 했더니 ‘글쎄’ 하는 표정이다. 딸은, 받은 사람에게는 똑같은 ‘고맙습니다’일 뿐이라며 그 문장이 자동완성인지, 붙여넣기인지, 한 글자씩 눌러쓴 건지 아무도 모를 거라 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아빠는 누가 보낸 휴대폰 메시지가 자동완성인지, 한 글자씩 썼는지 구분할 수 있어?” 딸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고, 시를 읽어주며 훈훈하게 인생의 교훈을 전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똑같은 문자메시지라도 어떤 것에는 증발되지 않는 마음이 담겨서 읽는 사람의 마음에 도달할 거라는 나의 믿음은 딸의 합리성을 넘지 못했다. 나 역시 명절에 받은 메시지 중에 어떤 것이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은 것이고, 어떤 것이 단체로 보낸 것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 이 믿음이 옳다는 근거도 없다. 그래도 아직 자동완성 기능을 복구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믿음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한강 작가의 아버지’로 더 유명한 한승원 작가가 팔십 인생을 돌아보는 소설을 냈다. 제목이 회고록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의 길》(문학동네)이다.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아기 박새에게 늙은 백양나무가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동화가 실려있는데, 백양나무는 아기 박새에게 몸이 자라는 만큼 사랑과 선행을 해야 한다 가르쳐주며 이렇게 말한다.
자기보다 더 몸이 약한 것과 가난하고 외로운 것들을 품어주고 돌보아주는 것, 그들을 위로해주고 그들과 더불어 화평하게 사는 것이 사랑하기이고 선행하기인 거야. 세상을 살아가는 것들은 다 그렇게 사랑과 선행을, 배고픈 것들이 밥을 먹어대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거란다. (31쪽)
나와 이름이 같은 대학 선배가 시집을 냈다. 이 시집(이한주, 《몸이 기억하고 있다》, 삶창)에 실린 시 한 편을 딸에게 읽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