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이한주의 책갈피]
데이트를 원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데이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이, 성도들의 눈을 마주치며)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크리스천들에게, 데이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배우자를 만나고, 평생을 함께할 주님의 가정을 꾸리는 것입니다. (사이)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결혼을 해야 할까요? 대답해보실까요? (성도들에게 묻고, 몇몇이 대답하면) 크리스천에게 결혼은,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란 공동체를 통해 주님 안에서 책임과 질서를 배우는 것입니다. (76-77쪽)

교회에서 자주 듣던 설교다. 교회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성(性)’을 설교했고, 올바름의 기준을 가정을 이루는 결혼이라 가르쳤고, 이것을 ‘혼전순결’이란 말로 각인시켰다. 생식능력이 갖춰진 10대 중반에 결혼해 30대 중반에 며느리까지 맞아들였던 옹고집 시대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 시대의 혼전순결은 2-3년 정도 욕구를 참는 일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우리 시대 청년들은 20년이 넘는 혼전 기간을 보낸다.
생식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 능력을 억제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 과연 창조주의 뜻일까? 섹스에 대한 상상을 음란으로 규정하고, 결혼을 장담할 수 없는 청년들의 섹스를 죄라 단정하는 일이 올바른가? 기도와 인내로 참으라고 어른으로서 청년들에게 말할 자신이 있는가?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교회는 ‘섹스’ 대신 ‘성’이란 고풍스러운 단어를 택해 현실과 동떨어진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의 주인공인 혜인이. 유치부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찬양대 반주자로 열심히 봉사했지만 혼전 성관계로 ‘더러운 그릇’이 되어버린 교회 청년은 목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과해. 혼전 성관계를 죄로 단정 짓고 성관계가 서로를, 영혼을 파멸시키는 거라고 말했던 것을 사과해. 그리고 이 교회에 퍼진 소문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 청년부 목사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을 사과해. (149쪽)

동화가 아닌 소설판 〈옹고집전〉(종합출판범우, 《토끼전 옹고집전 배비장전(외)》에 수록)을 읽으니, 며느리까지 있는 옹고집의 나이가 37세로 나온다. 노인으로 알고 있던 옹고집이 30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15-16세가 되면 혼인했던 조선시대였으니 30대 후반에 시아버지가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옹고집과 비슷한 나이인 30대 후반 미혼 청년에게 이런 하소연을 들은 적 있다. “열여섯 살에 몽정을 처음 했는데, 그 후로 20년 동안 참기만 하고 살았어요. 이걸 생각하면 억울하고 비참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