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호 우리 시대 종교 사상가들과의 만남 시즌3]
우리는 언제나 내부를 가진다. 그 내부는 나의 내면이나 가정, 신앙, 국가 등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관용과 환대로 가득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고, 실제 살고자 애쓴다고 하더라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또는 내가 통제해야만 하는 어떤 경계가 내 삶에 그어지는 것은 거의 필연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출생지와 가정이나 환경을 가진다. 그런 요소들을 기반으로 삼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경계를 설정하거나 부여받아 삶이 자리 잡는다.
신앙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경계다. 아무리 열린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신자의 삶은 나의 종교와 타인의 종교, 이를테면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 조금 좁히면 개신교 종파와 그 외 그리스도교 종파 및 다른 종교 사이에 경계를 설정하고 사는 삶이다. 이 경계는 때로 배타적인 경계로도 작동한다. 만일 어떤 신념이나 신앙이 내 안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우리는 나와 타자 사이를 가르는 가운데 나의 신앙이나 종교, 또는 나의 공동체를 우위에 놓으면서 타자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기 쉽다.
이런 일련의 사고나 행동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해도, 자칫 다음과 같은 태도로 기울어지기 쉽다. 이를테면, ‘진리는 어디까지나 나 또는 우리에게 있고, 타자에게는 없다’거나 ‘타자에게도 진리는 있으나 우리의 진리보다 열등하거나 불완전하다’는 태도가 쉽게 내 신앙의 경계 안, 곧 나와 우리의 내부에서 움트게 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어떤 태도나 사유가 필요할까? 경계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경계의 지형을 바꾸거나 경계 너머로 과감하게 나가보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참된 개방성으로 자리한다.
경계 바깥으로의 모험이 필요한 이유
경계 너머로의 모험은 바로 경계 너머에 사는 이들을 만남으로써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줄 뿐 아니라, 내 경계 너머에 사는 이들이 가진 좋은 것을 선물로 받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서로의 경계가 그리 견고하지 않으며, 때로는 잠정적으로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공유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실제로, 신앙의 경계를 서로 넘나들면서 공동의 기도와 실천을 행하는 교파 간 대화나 종교 간 대화의 시도가 존재한다. 한국 가톨릭 부제들 사례가 한 예가 된다. 가톨릭 부제들은 교구마다 차이는 있으나 부제가 되면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의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이 기간에 정교회 한국대교구청,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대한불교조계종 화계사, 원불교 강남교당,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서울중앙성원 등을 방문하며 가르침을 듣고, 경계를 잠시나마 넘어서는 훈련을 한다. 이를 통해 사제가 되고 나서도 경계 안의 소유를 지키거나 파수하는 데 급급해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열린 자세로 대화와 참여에 나서는 성직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오늘날 종교 간 갈등이 극에 달하고, 타 종교 혐오마저 심화되는 시대에 이런 훈련을 받은 사역자와 신자, 그리고 그런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사역자와 신자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전자가 대화와 협력, 환대를 위한 공간을 여는 일에 더 익숙해질 것이라고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경계를 넘어서는 일은 여러 종교적 철학자에게서도 다양하게 일어난다. 시즌1(본지 394-400호)과 시즌2(본지 405-411호)에 등장한 철학자들 대부분도 그런 일에 열린 자세를 가진 학자들이었고, 실제 삶에서 자기만의 신앙을 고집하기보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 타자와의 공존을 꾀하는 여러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즌 인터뷰이는 바로 이런 경계 넘어서기를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실천으로 삼아 종교적 타자와의 대화와 공존을 적극 실천한 학자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시즌의 주제를 ‘신앙의 경계를 넘어서’로 잡았다.
여기서 경계를 넘어선다는 말은 단지 자기 신앙의 경계를 넘어선 철학자들의 삶과 사유를 안내하겠다는 의미만 담지 않는다. 이번 시즌의 기획 전체가 나와 독자들이 가진 경계를 넘어보고자 하는 시도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아마도 〈복음과상황〉을 읽는 주요 독자층은 대체로 개신교 신앙, 조금 더 좁히면 복음주의 신앙을 기반으로 삼아 삶과 사유 지평의 확대를 꾀하는 이들로 이루어져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사상, 종교철학이라고 하면 일단 그리스도교를 생각하기 쉽고, 개신교를 먼저 생각하기 쉽다. 이번에 대화한 철학자들에는, 개신교 내부에 있더라도 그 경계를 확장하거나 넘어서는 일에 헌신하는 이들과 개신교 배경을 아예 가지지 않은 이들, 심지어 무신론을 표방하는 이들도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모두 각자가 처한 경계 내부에 안주하기보다 경계 바깥으로의 모험, 타자와의 적극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삶과 신앙 또는 신념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경계 너머로 나아가는 일의 이점을 알게 될 것이며, 또한 우리 삶과 신앙의 한계를 깨닫거나, 넘어서고자 하는 일에 나서기 위한 기폭제를 얻게 될 것이다.

토마시 할리크부터 사이먼 크리츨리까지
가톨릭 신부이면서 유려한 글로 폭넓은 대중들과 소통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토마시 할리크(Tomáš Halík)는 교회 울타리에만 머무는 것을 넘어 공산주의 정권 시절 자유와 평화를 위해 지하교회에서 투쟁한 인물이다. 체코 민주화 이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공식 자문단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할리크 신부의 진솔한 고백을 통해 우리는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는 삶, 더 나아가 완고한 교리나 신앙의 좁은 틀에 머물지 않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것이다. 그가 쓴 책은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그리스도교의 오후》(분도출판사) 등 여러 권이 번역되어있다. 이미 책으로 만났던 독자들은 그의 유려하고도 심원한 사상이 어떤 삶과 사유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집필 작업 기저에 좁은 경계 내 삶을 넘어서 이웃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고, 섬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네덜란드 태생이면서 프랑스와 룩셈부르크 등지에서 폭넓게 활동하는 크리스 다우더 판 트로스트베이크(Chris Doude van Troostwijk)는 현재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와 룩셈부르크 종교사회연구원에 재직하면서 경계 너머로 모험하는 신앙의 삶을 사는 학자다. 본디 철학을 공부한 그는 현재 발명적 신학(Inventive Theology)이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비-교리적 신학의 가능성을 적극 탐색하는 도전적인 사상가다. 우리는 발명적 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리적 제한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는 신학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ABC-Climont 프로젝트를 통해 학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 함께 모여 “변화하는 세계에 직면하여, 우리 삶의 장벽을 허물고 예상치 못한 만남을 만들어내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믿음’을 함양하는” 기획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클리몽을 거점으로 삼는 이 기획을 통해 사람들은 생태적 대안 모색, 철학적 신앙과 대화, 공동체적 삶의 실천 등을 구체적으로 살아내고 있다. 한국 교회와 신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의 근황도 듣게 될 것인데,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놓치기 힘든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소르본대 철학과 교수인 클로드 로마노(Claude Romano)는 흔히 알려진 프랑스의 1968년 이후 세대로서 새로운 현상학적-해석학적 철학의 기획을 펼쳐가는 철학자다. 그는 이론적으로 유럽대륙철학의 경계를 넘어 분석철학과도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철학자면서 문학과 철학의 경계 가로지르기에도 일가견을 보여준다. 아울러 가다머와 리쾨르 이후 철학적 해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철학자로 평가받는 혁신적 사상가이기에, 독자들은 해석학적 사유의 현주소가 어떠한지 귀한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로마노는 학술적 철학의 경계를 넘어 오늘날 유럽의 위기 상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반성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위기 국면에 있는 전쟁과 폭력의 위협을 건너는 지혜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오랫동안 스트라스부르대 철학과에서 형이상학을 가르친 자콥 로고진스키(Jacob Rogozinski)는 유대인이면서 오늘날 유대주의 경계 내부에 머물기를 거부하는 철학자다. 이론적으로 그는 주체의 죽음이나 자아 살해에 대항하여 새로운 자아의 면모를 드러내기 위한 창조적 사유를 보여준다. 또한 이론의 경계를 넘어 혐오와 종교적 폭력 등 우리 시대의 정치적 현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철학적 이론 내부에 들여와서 치열하게 씨름하고 있다. 우리는 그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도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종교적 폭력과 혐오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도 배울 것이다. 또한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규정하지만, 여전히 유대주의의 중요한 면모를 계승하는 철학자로서, 특히나 최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도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가 표현한 대로, 팔레스타인을 억압함으로써 한때는 다윗이었으나 이제는 골리앗처럼 변해버린 이스라엘에 침통해하면서 그 책임을 오롯이 떠안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서,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씨름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욕 뉴스쿨의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 교수는 무신론을 표방하지만 삶에서 신앙과 종교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상가다. 곧, 무신론의 경계 내부에 머물기보다는 무신론자로서 무신론과 유신론의 경계를 허무는 종교적 철학자다. 가장 최근에는 《신비주의에 관해서》(On Mysticism)를 출간하여 신비주의가 종교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우리 삶을 위해 선용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점을 논증했다. 실제로 그는 이론적 철학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철학의 경계를 확장하여 음악이나 예술, 정치 등의 분야에서 유의미한 통찰을 제시한 바 있다. 저서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이후),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클레마), 《자살에 대하여》(돌베개) 등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어있다. 이번 인터뷰를 접하면서 독자들이 크리츨리의 사상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번 시즌은 우리 시대의 종교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기획의 마지막 여정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 여정을 통해 독자들이 전통적인 신학이나 교회의 가르침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물음을 접하고, 또 물음을 던지는 법을 함께 배우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통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답을 찾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철학은 답 이전에 올바른 물음을 던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시대를 사는 신자나 교회가 계속 잘못된 답을 내놓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접하면서 우리가 더 심원하고, 더 적절한 물음을 던지게 되길 바란다. 어쩌면 작금의 문제와 위기 중 여럿은 물음을 던지는 법이나 능력을 상실한 데서 비롯한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김동규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등을 주로 연구한다. (신학적 전제를 괄호 치고) 철학적 상상력을 통해 신과 신앙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 (비)신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으며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