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호 책방에서] 마크 오코널,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열린책들)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 마크 오코널 지음 |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2,000원
종말을 준비하는 사람들 | 마크 오코널 지음 |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2,000원

장마철이 되면 다른 때보다 예민해집니다. 하루하루 매출이 필요한 자영업자이니, 비를 뚫고 손님들이 오실까 걱정이 앞서죠. 그뿐만은 아닙니다. 2020년에 겪은 집중호우의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래요.

그해 8월 1일, 호우경보가 발효되고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어요. 일주일 내내 이어진 비는 산책길 하천을 거대한 물줄기로 바꾸어 주변을 쓸어버렸지요. 인근 대피소로 피신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집을 두고 갈 수 없어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어요. 물이 새기 시작했고, 전기차단기가 계속 내려갔습니다. 차오르는 물을 창고 앞에서 밤새 퍼냈어요. 비가 그치길 빌면서, 모든 게 끝날 수도 있겠다 두려웠던 일주일.

이때의 경험이 몸에 새겨졌나 봅니다. 이후 빗소리만 들리면 긴장이 되고, 우울해지죠. 아마 세상의 종말에 대해 꽤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저자는 종말의 징후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과도한 집착과 불안으로 상담도 받고요. 그러던 중, 본인이 예상하는 끔찍한 미래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로 해요. 1년 정도 종말론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한 거죠. ‘종말 여행’에서 발견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생존 지침서에 따라 생존 가방을 준비하고 시골에 벙커를 짓고 사는 이들은 자본에 기초한 도시 문명의 빈약함을 지적하지만, 생존 물품 쇼핑 목록을 유튜브에 공유하죠. 핵전쟁이 발발해도 안전한 초호화 벙커를 판매하는 기업은 각종 종말 시나리오로 공포 마케팅을 하고요. 실리콘밸리 뉴테크 억만장자들은 서구 문명의 끝을 예견하면서, 종말 이후를 위해 뉴질랜드에 땅을 삽니다. 화성에 정착촌을 건설하려는 이들도 있죠.

‘다른 대책은 없을까?’ 저자 마음도 착잡했나 봅니다. 많은 종말론자가 “자신의 공포에 대처할 방법”을 찾지만 정작 “남들의 고통을 줄이거나 예방하는 쪽으로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면서 여행을 마무리하거든요.

이미 세계는 망했고! 망해간다고 생각해요. 먼 미래까지 갈 필요도 없죠. 저자는 전쟁 난민들, OEM 공정으로 값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경쟁에서 낙오한 노숙인들에게서 종말을 봅니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종말을 기다려야 할까요? 저자는 갓 태어난 딸의 통통한 주먹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요. 인간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이고, 문명은 소멸하겠지만, 세계는 새로운 탄생과 새로운 사람을 내놓는 능력을 갖고 있으니까요.

종말에 몰두하는 건 “일종의 도피이며, 그 도피가 일종의 죽음”이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온전히 삶에 충실하자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럼, 수진과 희송은 종말적 상황에서 어떻게 살 거냐고요?

선물로 주어진 오늘을 충만히 누리며 살기. 붕괴되는 생태계와 폐허에 사는 이웃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장마를 대비해 방수 작업하기. 부디 올해 장마가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기.

이수진·김희송
경기도 연천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빵집이자 동네책방, 그리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 ‘오늘과내일’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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