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호 책방에서] 구민정·오효정, 《명랑한 유언》(스위밍꿀)

명랑한 유언 | 구민정·오효정 지음 | 스위밍꿀 | 18,500원
명랑한 유언 | 구민정·오효정 지음 | 스위밍꿀 | 18,500원

죽음을 실감하는 시간이 잦습니다. 생기 넘치는 청춘의 시절이 훌쩍 지나기도 했고, 황혼을 보내는 어르신들과 이웃하며 지내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오가며 인사를 나눴던 이웃의 부고를 벌써 다섯 번이나 들었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죽음’이라는 페이지를 자연스럽게 건너뛰었던 것 같아요. 죽음을 이긴 부활과, 고통과 눈물이 사라진 영원한 세계는 종종 묵상했지만요. 아이러니지요.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죽어야 영원이 열릴 텐데요.

이 책은 제목처럼 유언이 되었습니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오효정 작가가 책에 유언을 담기도 했고, 책을 마무리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구민정 작가는 친구 글에 자기 글을 덧붙여 책을 완성했습니다.

책은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떠난 이와 남은 이의 글이 교차 배열된 것처럼요. 갖은 고생 끝에 꿈에 그리던 드라마 피디가 되어 경력을 쌓아가던 오효정은, 아랫배 통증이 심해 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위암 4기 판정을 받습니다. 전도유망한 피디는 이제 31세(여) 위암 환자입니다.

하지만 오효정의 인생극장은 씩씩하게 다음 회차로 이어져요. 소식을 듣고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였고, 아주 오랜만에 엄마의 돌봄을 받으며 항암 치료를 합니다. 새로운 식구(食口)로 같이 프로그램을 만들던 친구 구민정과 반려견 태양이를 얻습니다.

매사 꼼꼼하고 주도면밀했던 효정이 동생에게 쓴 유언은 이렇습니다.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큰돈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데 써달라, 직접 고른 환하게 웃는 사진을 카톡으로 보낼 테니 영정 사진으로 부탁한다, 제사상에 간장게장을 올려달라, 매년 건강검진 꼭 받고 인생의 20퍼센트는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전시를 보거나 휴식에 쓰며 살아라.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돌봤던 친구 민정을 향한 당부.

“내 룸메 민정 피디님이 아주 아주 힘들어할 거야. 너도 알다시피 무지 여린 사람이잖아. 꼭 당신 탓이 아니라고 해줘. 옆에서 쪼잘대는 애 없어졌으니 심심하면 울 엄마한테 밥 얻어먹으러 오라고 해줘. … 더 넓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가게 해줘서 고맙고,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 행복했다고 꼭꼭 전해주렴.”

읽는 사람이 적어도 세 번은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유언을 남기고 싶어졌어요. 유언처럼 명랑한 삶을 살고 싶고요. 조만간 유언을 작성해 서로에게 전달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자주 감각해야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의 생을 더 애틋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매주 암송하는 신앙고백에 의미를 더하며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상실의 애통과 그리움을 충분히 감싸안는 부활을 믿습니다. 영원을 향한 소망이 지금 여기서 만끽할 환희를 더 이상 미루지 않게 함을 믿습니다. 아멘.

이수진·김희송
경기도 연천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빵집이자 동네책방, 그리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 ‘오늘과내일’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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