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호 20세기, 한국, 기독교]
2000년 4월 19일,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회자 중 하나로, 20세기 한국 역사 거의 전부를 눈으로 목격하고 몸으로 살아낸 추양(秋陽) 한경직(韓景職, 1902-2000)이 사망했다. 그는 해방 직후 1945년 겨울에 월남하여 남산 근교에 영락교회(당시 베다니전도교회)를 설립한 후, 1973년 은퇴하고 원로목사가 될 때까지 28년간 영락교회에서 목회하며 이 교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이끌었다. 은퇴한 후에는 25년가량 남한산성의 작은 집에서, 그의 인격과 삶을 대표하는 단어로 널리 알려진 ‘청빈’과 ‘겸손’의 삶을 살다가 2000년에 98세로 소천했다. 사망 당시 그가 남긴 재산은 체력이 쇠한 후 타고 다닌 휠체어, 지팡이, 겨울용 털모자, 옷가지와 생필품 얼마가 전부였다고 알려졌다. 4월 24일 오전 9시에 영락교회에서 열린 장례예배에는 추모 인파 1만여 명이 몰렸다. 총회장(總會葬)으로 치러졌으므로, 장례식장과 장례예배를 찾은 이들 중에는 영락교회와 통합 교단 인사가 많았다. 그러나 그가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인사에다, 연합에 힘쓰며 교파와 종교계를 초월하여 널리 존경받았던 만큼, 각 개신교단 관계자가 조문했고, 당시 영부인 이희호 여사 등 정치계 인사도 빈소를 찾았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