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호 로잔 1974-2024]
“창조세계돌봄은 확실히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복음적 이슈이다.”
“우리는 우리 세대에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시급한 문제에 직면해있다.”
창조세계돌봄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전 세계 복음주의 단체 및 교회의 참여를 촉구하는 〈자메이카 행동 요청〉이 정리한 두 가지 주요 결론이다. 이 문건은 3차 로잔대회 문서인 케이프타운서약에 담긴 창조세계돌봄 조항을 구체화하고자 2012년 모인 26개국 57명의 신학자·과학자·목회자·활동가가 심사숙고하여 내놓은 제안서다.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과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 WEA) 지원 아래 나온 이 ‘행동 요청’은 단순한 라이프 스타일을 향한 헌신, 전 교인 동원 및 모든 사회 동참 촉구,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을 위한 원칙 적용, 생물다양성 보전을 강화하는 지역 활동 등 10가지 구체적 실천을 요청한다. 이 목소리는 지난 12년 동안 세계 교회에 얼마큼이나 호소력 있게 전달되었을까. 한국 상황만 보면, 사회에서는 ‘기후위기 시대’라는 수사를 흔히 마주할 정도로 위기의식이 보편화됐지만 교회는 실질적 참여가 더딘 상황이다.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일주일간 진행된 제4차 로잔대회가 끝이 난 9월 28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 소망수양관에서 ‘포스트-로잔 창조세계돌봄 국제포럼’(Global Creation Care Forum, GCCF)이 열렸다. 10월 2일까지 이어진 포럼은 〈자메이카 행동 요청〉을 돌아보고, 세계 그리스도인의 창조세계돌봄 이야기를 공유하고, 다음 단계로 이어나갈 활동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세계 곳곳에서 창조세계돌봄 사역을 전개해온 약 100명의 리더가 참석해서 논의를 이어갔다. GCCF는 ‘로잔 창조세계돌봄 이슈그룹’(Lausanne Movement Creation Care) 주최, 인터서브코리아와 재단법인 한빛누리 공동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포럼 기간 및 이후에 이어진 논의를 취합해서 11월 내에 선언문을 내놓을 예정이다. 로잔대회가 시작되자마자 공개되어 비판에 직면한 서울선언과 달리, GCCF 결과물로 나올 선언문은 창조세계돌봄에 주목해온 신학자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뛰는 활동가를 포함해 모든 참여자의 피드백을 반영한 문건이다. 한빛누리와 인터서브코리아를 통해 배포되며, GCCF에서 공유된 논의와 자료 등은 이후 자료집으로 묶이어 출간된다.
본지는 9월 30일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여 전한다.
창조세계돌봄은 자연과의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
발표와 질의응답 순서로 진행한 기자회견은 로잔 창조세계돌봄 글로벌 촉진자 데이브 부클리스, WEA 신학분과장 레이 레뮤얼 크리잘도, 웨스턴 신학교 교수 루스 파디야 데보르스트, 노혜영 한빛누리 본부장이 발제자로 나섰다.
데이브 부클리스는 3차 로잔대회가 로잔운동과 WEA의 창조세계돌봄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발판이 되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복음은 잃어버린 죄인을 넘어 인간 세계, 창조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라고 정의한 그는 〈자메이카 행동 요청〉 이후 열린 지역 회의들을 소개했다. 각 회의에서 창조세계돌봄에 관한 신학과 최신 과학, 교회의 실천적 대응을 꾸준히 다루었으며, 이제 다음 단계 진입을 모색하는 중이라고 했다.
레이 레뮤얼 크리잘도는 2009년 모국 필리핀에서 큰 태풍과 처음 보는 수준의 홍수가 발생해 집과 재산을 잃고 생명까지 잃는 사람들 모습을 목격하면서 창조세계돌봄의 긴박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왜 그리스도인이 이 사역에 나서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학적·성경적 자료를 찾기 어려웠고, 이후 창조세계돌봄과 신학을 접목하기 위한 활동에 투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관련 출판물 발간, 신학 및 커리큘럼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다.
루스 파디야 데보르스트는 케이프타운서약에서 주요하게 언급하는 창조세계돌봄 소명을 짚었다. 4차 로잔대회에서 창조세계돌봄을 주제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6일 중 15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로잔운동과 복음주의 교회가 이 사역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는 탄식할 만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GCCF를 통해 자연보전부터 연구, 교육, 생물다양성 보호, 기후변화 적응, 창조세계돌봄 공동체 조직까지 개인과 공동체와 조직 가운데 다양한 계획이 시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자신이 몸담은 코스타리카의 기독교 공동체 ‘카사 아도베’(Casa Adobe)의 활동을 소개했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가 모두 나무 심기에 동참하고, 강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우리 이웃의 아주 소중한 공원을 지키는 일을 한다. 더불어 사람들을 교육하고, 연구하고 또 자연보전 활동을 모든 산림에서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고 부르셨는데, 그 이웃은 비인간 창조세계까지도 포함한다.”
한빛누리 노혜영 본부장은 GCCF가 한국 교계에 주는 의미를 나누었다. 그는 GCCF를 통해 한국에서 창조세계돌봄을 실천해온 단체와 성도들이 격려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회와 성도들이 매일의 삶에서 창조세계를 돌보고 회복할 수 있는 변화된 생활 방식을 꾸준히 실천할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실천에는 창조세계 훼손으로 심각한 피해를 겪는 약자들에 대한 손길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조세계 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사회 구성원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에 교회는 교회뿐 아니라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생태운동을 복음전도만큼이나 중요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정부와 지역자치단체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선하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생활 속 실천보다 더 실천적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질의응답.
‘기후위기시계’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는 시점까지 4년 정도 남았다. 갈수록 고조되는 기후위기 현실을 생각해보면, 창조세계돌봄의 큰 그림을 논의하는 GCCF 같은 자리가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 각자 어떤 자세로 창조세계돌봄의 문제를 바라보면 좋겠는가?
루스 파디야 데보르스트: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 자신이 구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는 증거자일 뿐이다. 물론 당연히 행동해야 한다. 염려하며 일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일의 성공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이 세상이 새롭고 바르게 되리라는 믿음에서 소망을 발견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증거일 뿐이다.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일과 약자들 문제는 겹치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이런 일에 참여하면, 약자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통해 복음이 증거된다.
레이 레뮤얼 크리잘도: 어떤 이들은, 특정한 창조세계돌봄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내가 할 건 별로 없구나’ ‘저 사람들에게 헌금이나 해야겠다’ 생각한다. 헌금도 중요하다. 아주 큰 문제를 해결하려면 협력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우리 스스로 값을 치러야 할 부분도 있다. 매일의 생활에서, 가정에서 하는 실천은 전체 사회의 구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매일의 실천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내가 가정에서 아내와 함께 생각하는 것은, 자연 회복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하지만 자연과의 관계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창조세계는 추상적이지 않다. 보거나 만질 수 있다. 나는 젊은 아빠로서 자녀를 키우는데, 가족 전체가 자연을 만지고 볼 수 있도록 마닐라에서 2시간 벗어난 외곽에서 살기로 했다. 창조세계를 TV나 유튜브에서 보는 것을 넘어,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곳이다. 벌레도 만지고, 나비도 보고, 벌도 본다. 오염된 강물도 본다. 단순히 자연보호가 아니라, 자연과 관계 맺는 일부터가 창조세계돌봄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브 부클리스: 절망은 세계적 현상이다. 나이지리아·케냐·필리핀·브라질·미국·영국 등 10개국 청년 1만 명이 참여한 자리가 있었다. 나라와 관계없이 젊은이가 미래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절망하는 지점이 기후변화의 문제였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환경에서 미래를 살 수 있을까’를 가장 염려했다. 나는 교회 리더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정 다음 세대에 복음을 나누고 싶다면, 그들이 가장 염려하는 이 이야기를 다뤄야만 한다고. 이 이야기에 관한 복음적 변증이 필요하다고.
겉으로는 계속 더 망해가는 듯 보여도 창조세계 가운데 있는 진정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래에 약속하신 완성에 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과 현재에서 작은 실천들이 이루어질 때 소망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 소망을 근육이라고 표현했다. 사용해야만 단단해진다. 우리가 몸을 단련하듯 믿음으로 소망을 새롭게 하는 일을 단련해야 한다.
소망을 살아낸다는 것은, 루스의 경우 대여섯 가정과 함께 공동체로 살아내며 자연을 돌보는 일이었고, 레이의 경우 가족과 함께 외곽으로 이사해서 자녀와 자연을 사랑하며 배우는 일이었다. 우리가 아파트에 살더라도 창문에 조그만 식물을 심을 수 있다. 집이 있다면 정원이나 텃밭 가꾸기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가 실천한다고 하면,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여행할지, 물건을 어떤 포장지로 싸갈지 등 소망을 훈련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을 하면 실제로 기쁨이 생기고, 속마음도 단단해진다.
레이 레뮤얼 크리잘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이 자리에 세계의 창조세계돌봄 전문가가 100명이나 모였다는 사실이다. 두세 사람이 결정하지 않고, 집단지성을 활용할 수 있다. 세계 교회가 논의한 결과물로 나올 선언문이 창조세계돌봄에 열정 있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선교 영역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도 설득력 있는 선언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선교적 과업의 실천을 논할 때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보이기 쉽다. ‘어떻게 빨리, 많은 결과물을 낼까?’ ‘이게 잘 안되면 다른 것을 해야지.’ 기계적으로 일을 끝내려는 선언문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시금 상상력을 품게 해주는 문장으로 구성되면 좋겠다. 기계적 방식보다 유기적 자발성, 유기적 관계로 이 일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격려하는 문장을 담으면 좋겠다. 유기적 관계란 유기적 라이프 스타일을 말한다. 농부를 예로 들면, 일의 상당 부분은 그냥 기다리는 데 있다. 스스로 일이 진행되는 시기를 앞당길 수는 없다. 인내로 기다리면서 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