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호 사람과 상황]
박순영 대표간사는 14년 차 선교단체 IVF(한국기독학생회) 간사다. 서울에서 6년 동안 캠퍼스 간사로 활동하고, 2018년 원주지방회에 와서 현재는 대표간사로 지부 학생과 담당 간사들을 만나고 있다.
주중에는 저녁 모임을 한다. 주로 6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된다. 월요일은 기도모임, 화요일은 소그룹, 수요일에는 리더모임이 있다. 지방회 소속 캠퍼스인 연세대, 한라대, 강릉원주대, 상지대, 경동대 학생들이 모여 예배하거나 강의를 듣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LGM(Large Group Meeting)은 목요일에 격주로 열린다. 낮에는 학생들을 일대일로 만나 교제하며 알아가는 ‘원투원’을 하기도 한다. 원주 IVF에는 파트타임 간사가 두 명 더 있는데, 각각 연세대와 상지대 캠퍼스를 담당하고, 한라대·강릉원주대·경동대는 박순영 간사가 담당한다.
선교단체 간사로 지낸 지 14년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캠퍼스에 필요한 복음이 무엇인지, 지금 학생들에게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학생들 마음을 듣기 위해 애쓴다. 끊임없이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의 신앙을 키워온 그의 사역 이야기가 궁금했다. 원주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박순영 대표간사를 만났다.
캠퍼스 선교는 좋은 물을 대는 일
사역지를 원주로 옮긴 데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주에 와서 알게 되었다. 지역에 따라 상황이 다르고, 이곳은 수도권보다 사역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당시만 해도 수도권은 학생 모집이 잘되었고, 간사 공동체만 15명 정도 규모였다. 상황이 어려워도, 이러다 없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간사는 대표간사와 새로 온 박순영 간사 둘 뿐이었다. 학교들 상황은 더 어려웠다. 학생들은 편입 등으로 떠날 고민을 하거나 학교에 머물지 않거나, 먼 곳에서 통학했다. 학생들을 어떻게 학교에 붙잡아둘 수 있을지, 학교 관계자가 할 법한 고민을 하게 됐다. 즐겁게 선교단체 내부 사역만 하다가 사역의 구조적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한라대에 가서 했던 건 교직원으로 있던 친구와 교수님들과 함께 아침 기도 모임을 하는 일이었다. 간사만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학생들에게 애정을 갖는 것이 필요했다.
- 학생 선교단체에서 사역하다 보면, 얼마나 많이 참여할지, 어떤 학생이 올지 걱정과 고민이 크실 것 같아요. 갈고 닦으신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어후. 적응이 되었냐 물으시는 거라면 전혀 아닙니다. 매년 신입생을 받고, 매 학기 졸업생을 파송하는 일이 반복되지요. 가르치면 떠나고, 어떤 학생이 들어오든 다시 처음부터 시작입니다. IVF는 비교적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 하는 곳이지만, 간사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지요. 제가 학생 때 공동체를 떠올리면, 지금 학생들은 이곳에 얼마나 매력을 느낄까, 재미없진 않을까 자신 없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어떤 특징보다도 유독 숫자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죠. 제가 이렇게 숫자에 연연하는 세속적(?)인 사람이란 건 전임간사 1년 차 3월부터 당장 알게 되었어요. 책임을 진다는 게 그런 건가 봅니다.
원주에 와서 처음 개척한 곳이 삼육대였는데, 리더 둘을 데리고 모임을 했어요. 공동체원들이 생기지 않아 괴로워하던 차에 짐 벨처의 《깊이 있는 교회》를 읽었습니다. 책에서 두 농장 비유가 나와요. 어떤 농부는 자기 땅에 울타리를 쳐서 안에 있는 가축과 울타리 밖에 있는 이웃 농장의 가축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농장이나 목장이 넓은 지역에서는 농부가 울타리를 쳐서 재산을 보호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우물이나 샘을 파서 오지에 귀중한 물을 공급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축이 길을 잃어도 죽지 않으려고 절대로 샘에서 멀리 떠나지 않아요. 깨끗한 물이 공급되는 한, 가축은 샘 근처에 머무르죠. 두고두고 제가 기억하는 비유예요. 우리는 고작 대학생 선교단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운동원을 기르고 있으니 이곳에 좋은 물을 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게 가장 효과적인 선교 방법이라 믿게 되었죠. 공부하고, 청년들을 연구합니다. 삶을 최대한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리더들과 함께 좋은 전략을 세우고 깊이를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입니다.
선교단체 안에서 직접적으로 말씀을 다루는 일
그는 대학생이 되어 신앙을 갖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서 시작한 대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를 따라 교회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간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신앙의 열정이 생겨 QT도 하고, 학교에서 열린 ‘개강 기독인 연합 예배’ 포스터를 보고 예배당을 찾아갔다. 그 자리는 사실 교내 선교단체들이 연합해 모이는 예배였다. IVF 공동체원인 학과 선배가 있었다. “네가 크리스천이었어?” 하면서 그를 IVF로 초청했다. 건강한 선교단체라서 다행이었다. 매일 아침 8시에 기도모임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예배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첫 모임에서 변증 서적을 읽었는데, 새롭게 느껴졌다. 신앙에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다.
- 간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IVF 안에서는 신학교로 진학해 목사가 되거나 간사가 되는 건 살짝 타협하는 듯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시민단체나 NGO, 로스쿨 등 전문직의 길을 가야 IVF에서 배운 대로 사는 방향이라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선교단체 간사가 되는 건, 이 세계관 운동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택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어요. 꽤 오래 고민했죠. 사회복지전문대학원에 가려고 원서 접수를 하고 입학금만 내면 될 때였는데, 졸업생 신분으로 IVF 수련회에 가게 되었어요. 기도팀으로 기도하면서 제 안에 여전히 대학생 후배들을 향한 마음이 크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제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 운동은 선교단체 안에서 동료를 만드는 일, 직접적으로 말씀을 다루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렇게 간사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역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아요. 다만, 간사로 활동하면서,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자주 보죠. 그런 분들을 보면 제 일이 덜 치열한 것처럼 느껴져요. 중간에 신학을 해볼까 했던 적도 있고요. 활동가를 해볼지, 귀농을 해볼지 고민했던 적도 있어요. 물론 그런 마음은 기다리면 지나갑니다.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다루고 가르치는 일이 제게는 더 맞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세우는 선교
요즘 학생들은 동아리에 가입할 때 사전 조사를 많이 한다. 들어가도 괜찮은 곳인지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의심은 기독교에 대한 의심, 선교단체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 기독 동아리, 선교단체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가 낮아진 상황이라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기독교 자체가 우호적인 단체가 아니죠. 신뢰가 낮아졌달까요?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섰다고 느껴요. 대학생 때는 누가 날 어떻게 보는지,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졌는지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을 시기잖아요. 선교단체에 소속되는 것이 매력적인 이미지는 아니라 여기죠. 어떤 학생들은 몰래 오기도 해요. 건강한 방식으로 선교단체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선교적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선교단체가 선교하는 주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선교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는 거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줄 한 사람이 선교하는 거예요. 좋은 이미지로, 뭔가를 나눠주면서, 우리 단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주는 것만이 꼭 효과적인 전략은 아닌 것 같아요. 캠퍼스에서는 믿고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그건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그런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선교단체의 선교 전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계속 나와요. 젊은 친구들이 개인주의화되어 있지만, 명확한 자기 언어, 세계관을 찾으면 완전히 몰입하기도 해요. 리더들은 정말 많이 헌신하고요. 누구보다 자발적으로, 탁월하게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학기마다 학생들 필요를 파악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것을 고민해 오셨잖아요. 간사님께서 사역하면서 발견한 학생들의 필요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ID 카드의 실종이랄까요? 학생들에게 자아 정체감이 없다 보니 대학 문화에서 도태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확신을 강하게 심어줍니다. 대학이 특별히 경쟁을 부추겨서가 아니라 자신을 어딘가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다 보니 더 현실적인 것만을 쫓게 되는 것 같아요. 약자는 더 약자의 자리에 처하고, 가진 사람은 부러움을 삽니다. 도태되지 않으려는 방법으로 실력도 물론이지만, 사회성과 성격이 너무나 중요해요. 뚝딱이거나 불편을 끼치는 빌런은 봐주지 않는 대학 문화 속에서 선교단체 공동체가 그들의 존재를 읽어주고,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죠. 그것만으로 선교단체는 다른 공동체와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계속 가르치고 섬김을 훈련하면서 자신만의 ID를 찾아가도록 돕죠. 더불어 기독교 세계관을 배우며 삶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힙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학 안에서 배워야 할 건 다 가르치는 거라 생각해요.
- 학생들의 구체적인 삶을 듣고, 공감하는 일이 어렵거나 힘들진 않나요?
깊이 보면 오히려 어렵지 않아요. 저는 평화적 대화법을 공부했어요. 상대가 말한 것을 똑같이 되돌려주면 됩니다. 해결해주려 하는 것보다 낫죠. 그리고 에니어그램으로 사람들을 보려 해요. 나와 다른 사람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늘 어렵잖아요. 저는 그런 관점에서 이 친구가 어떤 고착에 빠져있는지, 어떻게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는지 고민하며 보려 해요. 그렇게 애정을 유지하다가, 이야기할 때 주의 깊게 보면 이해가 다 됩니다. 어쩔 땐 “그럴 땐 왜 그러는 거야?” 정직하게 질문하는 편이에요. 대학생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건, 정체성이 흩어지고 실종된 이들에게 다시 살을 덧붙여주는 작업 같아요. 파편화되고 어떻게 자기를 정체화해야 할지 모르고 여기저기 떠도는 느낌인데, 거기에 살을 붙여주고 이야기로 되돌려주는 일이죠.
- 대학 문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달라지고 있잖아요.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인데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 있나요?
사라졌는데 다시 붙잡은 게 ‘리더 자발성’이었어요. 예전에 비하면 사람들 사이의 경계가 점점 강해지고 있잖아요. 예전엔 선배 리더가 후배에게 ‘너 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많이 권면했는데, 어느새 그런 일이 어려워졌죠.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문화가 사라졌어요.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게 두렵고 불편한 일이 되었죠. 모임에 나오라는 말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리더들은 관계에 부딪혀보는 기회가 적어졌죠. 어떤 사람을 위해 행동하고, 기도하고, 씨름해보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이건 단순히 공동체원을 늘리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리더들이 구성원들을 사랑해보려는 노력과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거죠. 한동안 그런 일들을 간사들이 대체했었어요. 일일이 구성원들을 만나 챙겼는데, 그게 답은 아닌 것 같았어요. 학생들이 감화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학생이 학생을 기르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어요.
저희가 지방회에서 새로운 문화를 세웠다고 자부하는 것 중 하나는 사회선교 담당자를 세우기로 한 거예요. 작년부터 그걸 해보니까, 담당자는 각자 한 해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누는 기획을 하게 되었죠. 작년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했었고, 올해는 장애 인권에 대해 알아보고 함께 활동해보는 일을 이어오고 있어요. 최근에는 원주 지역 청소년들의 쉼터와 학교를 운영하는 ‘협동조합 길터’와 연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IVF 학생이 청소년들과 직접 관계 맺고 농촌 봉사활동을 함께 가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일
- 문학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평일에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 10시가 됩니다. 제가 하는 일이 주로 이야기들 틈에서 지내다 오는 거죠. 예배 중간에 울면서 뛰쳐나가는 학생이 있으면, 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듣고요.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적 문제를 겪었거나, 경제적 문제가 있는 친구의 속사정을 다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고 나면 집에 와서 어쩌질 못하겠더라고요. 일상으로 전환이 안 되는 거죠. 학생들의 문제라는 게, 제가 몰두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 안에 새로운 좋은 이야기가 부어져야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고립된 문제로부터 전환할 또 다른 이야기가 제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오래 걸리는 세계문학 전집이나, 한 구절이라도 집중하고 씨름해야 하는 시집을 보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읽고 나면 아침에 다시 새롭게 기도할 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인간 이해에 가장 많은 도움과 자극을 주었던 것은 톨스토이 소설들이에요.
- 페미니즘에도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셨어요.
페미니즘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으며 깊게 고민해보기 시작했어요. 그 책을 읽게 된 계기는 IVF에서 성 윤리 규정을 만드는 팀에 참여하면서부터였어요. IVF 간사 중엔 남자 선배가 압도적으로 많은 환경이었어요. 토론과 회의도 많다 보니 공부하지 않으면 밀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여성 간사들 처우를 돕고 리더십을 세우기 위한 여성 간사 소위원회가 따로 IVF 거버넌스 중 한 부분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냥 그리스도인이 정체성만 가진 사람은 없잖아요. 생태주의자 그리스도인, 평화주의자 그리스도인, 민주주의자 그리스도인 등. 저의 경우는 ‘여성주의자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화가 가장 끌리는 것 같아요. 제 삶과 지향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 같고요. 여성주의로 성경을 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조직에서나 돌아가는 현안에 대해서도 제 안에서는 여성주의 프레임으로 정리가 되고, 그 방식으로 풀어가려 애쓰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위는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돼요.
- 사역하면서 육아도 병행하고 계시잖아요. 힘들진 않으세요?
감사하게도 3년 전에 아이를 갖게 되어서 육아와 사역을 병행하고 있어요.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어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덕이죠. 저녁에는 남편이 아이를 보고, 아침에는 제가 봐요. 간사들 사이에서 수련회 두 번 하는 것보다 육아가 더 힘들다는 말이 있는데, 육아는 정말 쉽지 않아요.
사실 아이 기르면서 캠퍼스 사역하는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아요. 국제 IVF에 가면 아기 데리고 설교단 올라가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아쉽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문화가 아니죠. 저는 간사 일을 시작할 때부터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여자 간사는 결혼하면 왜 다 그만두냐,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지금도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아 마음이 많이 쓰여요. 특히 수련회 갈 때는 거의 일주일씩 보지 못하니까요. 가장 좋은 건 수련회나 캠퍼스 모임에 제가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겠죠. 아직은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 올해 복음과상황 독자위원이 되셨습니다. 복상을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제가 사실 평소에 미디어 매체를 많이 보지 않아요. 라디오든 TV든 잘 보지 않으니까 제게는 복상이 믿을 만한 외부 세계와의 연결이에요. 내가 알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모여있는 외부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엔 너무 많은 정보가 있잖아요. 그중에서도 나에게 꼭 필요하고 내가 알아야 하는 것 위주로 정리해주는 그런 신문 같은 존재죠. 제가 몰랐던 단체를 알게 되기도 하고, 활동가들의 삶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읽다 보면 당장 거리로 나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기사처럼 보는 게 아니라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도 많고요. 제게는 도전과 정보를 동시에 주는 그런 책인 것 같아요.
- 간사님의 요즘 고민은 무엇인가요.
진로 고민이죠. 다들 그렇지 않나요? 어쨌든 나이를 먹으면서 캠퍼스 사역도 한계를 느끼니까요.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도 있고요. 육아 고민도 큽니다. 워킹맘으로서 고민도 많아요. 이런 부분은 학생들과 나누기 어려워요. 건강하게 나눌 공간이나 자리를 찾지 못한 것도 사실이에요. 책을 통해서 조금씩 위로받고, 나만 힘든 건 아니구나 하면서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 간사님께 후원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요.
제가 중간에 지방회를 옮겼잖아요. 전에 있던 지방회에서 알게 된 친구들도 있죠. 저한테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계속 후원해주는 걸 보면 여러 생각이 들어요. 제게는 그게 하나의 시선이죠. ‘간사님이 아직도 저기에 똑같이 계신지 보고 싶다’는 시선으로 저를 보는 것 같아요. 후원자분들은 사회생활하면서 타협도 하고 싶고, 나름 힘들기도 할 텐데, 제 기도편지나 제가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간사님이 여전히 사역지에 계셔서 감사하다, 다행이다, 계속 보고 싶다 이런 마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가끔 찾아오기도 하고요. IVF와 연관이 없지만, 그래도 저 개인을 지지해주는 마음으로 후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끔 힘들다고 하면 바로바로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려운 시대에 계속 버텨달라고 하는 응원 같아요.
진행 정민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