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호 책방은 열린 문]
구미역에서 3분 거리, 작은 상점들이 즐비한 금리단길에 무인 책방 온유가 자리 잡고 있다. 책방에 들어가 구경하는 내내 아기자기한 공간과 깔끔한 인테리어에 놀랐다. 남자 대표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곳이라 들었을 때 예상했던 풍경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수익금을 전부 기독 문화나 사회 환원에 사용한다는 데서 다시 놀랐고,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대표님이 책방 로고 캐릭터와 똑같이 생기셔서 한 번 더 놀랐다. 여러모로 감탄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떤 계기로 이 책방을 운영하게 된 걸까.
“구미는 제가 태어나서 대학 진학 전까지 있던 곳이에요. 부모님과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구미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공단 지역인 구미에는 청년층이 많지만, 기독교 문화를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느껴왔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독교 문화 공간을 마련하기로 결심했고, 접근성이 좋은 책방 형태로 공간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책만 판매하는 서점이 아니라 독서모임, 북토크 등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기독교 문화를 확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생각했어요.”
김주영 대표는 책방을 시작하기 전에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 현재는 노인복지 사업을 하면서 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노인 인식 개선에 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으며, 청소년 복지 영역에도 참여하여 위탁 사업 발굴과 대안학교 강사로도 활동한다. (‘sogm’이라는 문화선교 공동체에서 인턴으로 섬기며 지역 문화 선교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중이다.) 사회복지사라는 본업은 따로 있고, 사이드로 책방을 운영하는 셈이다.
“오픈한 지 1년이 되어갑니다. 3개월 차까지는 서점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이때는 본업에 신경을 많이 못 썼죠. 아침 11시 오픈, 밤 11시 마감이에요. 무인 책방이지만 오픈과 마감 때는 꼭 오려고 하다 보니 일하는 도중에 들르기도 했어요. 공간에 채울 책과 소품을 진열하기 위해 개별 작가님들께 연락하느라 바빴습니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겨서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 책방 일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 일이 바쁘면) 어쩔 수 없이 소홀해질 때도 있고요. 여유 있을 땐 왕창 합니다.”
구미 기독교인의 연결 고리 만들기
처음부터 서점 오픈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준비 과정도 치밀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목적만은 분명했다. 바로 구미에 기독교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다.
“구미에 기독교 문화 공간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려 할 때, 진입 장벽이 낮은 업종이 서점이더라고요. 독립서점은 비기독교인 대상으로도 문턱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책방 타이틀이 있으면 기독교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교회들과 유리하게 협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곳 계약을 작년 3월 정도에 했어요. 한 달 정도 생각만 하다가, 갑자기 좋은 자리가 나와서 무작정 계약했죠. 계약하고도 4개월 후인 작년 여름에 오픈했습니다.”
서점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어느 정도 운영 기간을 예상하고 오픈했는지 궁금했다.
“정확한 시일을 정해두지는 않았지만, 가늘고 길게 가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월세 비용도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 찾아보고, 공간도 너무 크면 운영하기 힘드니 부담이 없을 정도의 크기로 찾아봤어요.”
책방에는 다양한 기독교 소품도 진열되어있다. 소품과 책의 판매 비율을 여쭤보니, 소품 판매 비율이 높다고 한다. 김주영 대표는 책방 온유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기독교 소품 중에도 쿨하고 예쁜 물건이 많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좋은 기독교책도 소개해주고 싶었다.
책방 온유의 주 고객층은 청소년과 청년이다. 그리고 처음엔 손님 비율을 기독교인 6, 비기독교인 4 정도로 예상해서 독립출판물도 꽤 진열했다. 운영하다 보니 손님들은 기독교책을 더 많이 찾았다. 지금은 기독교인 8, 비기독교인 2 정도에 맞춰 운영한다.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선물도 사 간다. 기독교 메시지가 적힌 볼펜이나 엽서 등, 선물로 받았을 때 부담이 덜한 것들을 구입한다고 한다.
책방 온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무인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무인으로 운영했을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
“부담 없이 올 수 있다는 점이죠.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도 부담 없이 오실 수 있고, 오래 머물다 가시는 분들도 계세요. 저도 손님들 눈치를 많이 보거든요. 제가 오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도 계셔서, 손님이 있으면 늦게 들어가기도 해요.” 무인 공간이라는 특성상 손님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기에 한계가 있어, SNS와 방명록을 통해 소통 창구를 마련해두기도 했다.
서점 가장 안쪽에는 손님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이 공간에서 올해부터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오픈할 때부터 바퀴가 달린 책상을 들였다. 4월에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고 모여 대화 나누는 ‘온유 북클럽’을 진행한다고 했다. 영화 〈CONfideNCE〉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기독교 영화 상영회’도 열린다. 기성 교회에 계신 분들 연령대가 높다 보니, 책방 온유에서는 기성 교회에서 하기 부담스러운 것들을 하고자 한다. 청년들 눈높이에 맞춰 개성 있는 모임을 많이 진행하고 싶다.
김주영 대표의 책 고르는 법
인터뷰어인 나는 한동안 기독교책에 손대지 않았다. 다시 기독교책을 읽어보려 했을 때,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골라야 할지 막연했다. 온라인 서점의 평을 보고 구매하자니 편파적 의견이 많아 보였고, 표지나 제목만 보고 골랐다가 내용이 빈약해서 실망한 적도 있다. 그래서 김주영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기독교책을 고르고 진열하는지 궁금했다.
“신간 위주로 소개하려 해요. 크고 작은 출판사의 신간을 찾아보고, 흥미로운 책들은 먼저 읽어봐요. 깊게 읽지는 못하고, 후루룩 넘겨 보면서 대중적인 책들을 주로 고릅니다. 평신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요. 단어가 너무 어렵거나 현학적인 책들은 우선순위에서 미루고, 청년들이나 학생들이 읽고 싶어 할 만한, 읽었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들여놨어요. 애매한 책이 있으면 목회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해요.
보통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예상한 책이 잘 팔리는데, 예를 들면 애덤 마브리의 《잘 쉰다는 것》입니다. 쉼이라는 것은 나를 위한 게 아니며 쉼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책입니다. 또, 제 밑줄이 담긴 책을 큐레이션하기도 했어요. 그런 책도 잘 팔리는 편입니다. 큐레이션에 더 노력을 들여 한 권 한 권 해보려 해요. 예상외로 잘 안 팔린 책도 있어요. 시몬 베유의 《신을 기다리며》인데요. 관심이 적어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9평 서점의 영향
책방 온유는 9평의 작은 서점이다. 공간 구성과 배치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오픈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 지금 고민하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
“공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고민입니다. 책도 더 가져와야 하고, 소품도 더 진열해야 하는데,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초기엔 기독교인만큼 비기독교인에게도 다가가기 쉽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운영하다 보니 비기독교인들을 위한 공간 비율이 적어져서 그것도 고민이고요. 금리단길 상인회에서도 사장님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책방 온유가 기독교 서점이라는 걸 알고 계세요. 그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각산마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지역 상인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지역 아동·청소년 문화 체험 프로그램인데요. 이 프로그램을 만들 때 협력해서 책방 온유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합니다.”
김주영 대표는 책방 온유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눈치 보지 않고 오래 머물다 가길 바란다고 했다. 주변 교회에도 모임을 할 때 빌려드릴 수 있으니 자유롭게 연락달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서점을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반가운 손님은 누구였는지 물었다.
“청소년 때 같이 교회에서 활동했던 친구가 왔어요. 10년 넘게 못 본 친구인데, 우연히 서점에 온 거예요. 아직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사실과 근황 등을 알게 되어 좋았어요. 지방이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정말 커요. 오시는 분 중 목사님도 계신데요. 그런 분들이 응원해주시고,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할 때도 좋았어요.”
변화하는 상점, 책방 온유
김주영 대표는 이 서점이 계속 바뀔 것을 염두에 두고 공간을 구성해왔다. 책장도 모듈 형식으로 하고, 책상도 이동하기 편리한 제품으로 구매한 이유이다. 책방 온유를 둘러보고 나니, 인터뷰 기간 중 읽었던 책의 저자, 도쿄 독립 서점 ‘Title’을 운영하는 쓰지야마 요시오의 말이 와닿았다.
‘상점을 열다’, ‘상점을 이어가다’라는 말이 있듯, 일반적으로 ‘상점’이란 인간의 의지에 따른 산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하는 상점을 보면 찾아오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스스로 형태를 바꾸기도 하면서, 그 상점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돌베개)
책방 온유의 수익금은 전액 취약계층, 미자립 교회, 기독동아리, 문화 선교, 콘텐츠 개발, 커뮤니티 운영 등을 위해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된다. 적자가 나더라도, 적은 금액이라도 사회에 환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주영 대표에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수익금으로 선물 패키지를 만들어 지역 보육원에 방문한 때였다. 주변의 아는 청년들과 함께 선물 패키지를 포장했다. 그 보육원은 6명씩 한 방을 쓰고 있는데, 방 대표들이 나와서 선물을 받아갈 때 뒷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또 ‘tsfat 쯔팟’ 출판사와 같은 독립출판사에도 후원하고 있다.
책방 온유를 방문하기 전에 SNS를 먼저 둘러보았다. 새로 진열한 책에 대한 추천 글을 읽다가, 방문하면 시몬 베유의 《신을 기다리며》를 사겠다고 마음먹은 바 있다. 무서울 정도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시몬 베유가 기다리는 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무사히(?) 한 권을 사올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김주영 대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은 그저 상대에게 “네 괴로움은 무엇이냐?”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불행한 사람이 존재함을 아는 것이다. 집단의 일원 혹은 ‘불행하다’는 꼬리표가 붙은 사회적 범주의 한 사례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우리와 꼭 닮은 인간으로서,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불행이 덮쳐 모방 불가능한 낙인이 찍혀 버린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러려면 없어선 안 되는 어떤 시선을 그에게 던질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그 시선이란 무엇보다 주의 깊은 시선이다. 거기선 스스로를 몽땅 비워 낸 영혼이 자신이 바라보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본디 모습 그대로 자신 안에 받아들인다.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신을 기다리며》, 복있는사람)
책방 온유는 손 내미는 공간이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상관없이 환영하고, 그들에게 대화하자고 청한다. 방문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주고자 청하는 공간. 지금과 같은 ‘주의 깊은 시선’으로, 이런 공간이 필요했던 사람들이 갈증을 해결하는 곳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바로잡습니다: 2025년 5월호 18~27쪽에 실린 이 기사에 김주영 대표의 이름이 '이주영'으로 잘못 기재되어 바로잡습니다. 김주영 대표와 독자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장진경
본지 객원기자. 독립서점 매니저, 오래된 서점 직원, 논술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하셨던 할아버지처럼 훗날 서점을 열고 싶다. 할아버지처럼 책만 파는 서점을 열 수 없을 것 같아, 다양한 형태의 서점을 고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