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호 무브먼트 투게더]
김동춘 현대기독연구원 원장은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이하 ‘느헤미야’)에서 연구위원으로 7년, 전임연구원으로 8년 총 15년간 신학 연구와 강의를 해왔다. 지난해 12월 느헤미야에서 은퇴한 그는 새해부터 자신이 2004년에 설립한 현대기독연구원(전 현대기독교아카데미)에서 활동을 이어간다. 그의 은퇴를 기념해 출간된 학술총서 《신학과 사회적 상상력》의 책임 편집을 맡은 느헤미야의 배덕만 원장은 김동춘 원장을 “지난 30여 년간 이 시대에 교회가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신학적으로 안내하고 돕는 일에 헌신해 왔다”고 소개한다.
김동춘 원장은 총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한 지 50여 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때로부터 30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신학과 사회를 연결하는 데 집중해왔다. 민주주의를 짓밟는 친위 쿠데타가 아직 수습되지 않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온 사회가 참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2024년의 마지막 날, 그에게 여전히 신학에 희망이 있는지, 신학의 쓸모를 확신하는지 물었다. 인터뷰는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현대기독연구원에서 진행됐다.
- 얼마 전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은퇴식(24.12.11.)을 가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저의 신학적 여정에 있어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제도권 밖에서 신학 교육 기관을 세우고 운영하며, 한국 기독교에 선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감사와 보람을 느낍니다. 이곳에서 신학적 문제의식이 뚜렷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 시간은 제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느헤미야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신앙과 삶을 통합하려는 신학적 실험장이었습니다. 우리가 제공한 강의와 워크숍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여자들이 자신의 신앙과 사회적 책임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인생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 복상에 젊은 독자들이 늘어나서요. 원장님에 대한 소개가 추가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총신대와 같은 대학교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로, 한국교회에서 매우 보수적인 교단인 합동(대한예수교장로회) 출신입니다. 신학대학 시절 5·18을 겪으면서 교회의 정치적 책임에 문제의식을 느껴 신학적 전향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부터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가 신대원 입학을 불허하여 3년 동안 진학을 못 하다가, 어렵게 신대원에 들어가 공부를 마치고 오래전부터 꿈꾸던 독일 유학을 감행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마쳤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위르겐 몰트만의 공동체적 개념에서 본 삼위일체적-생태학적 구원 이해’입니다. 한국에 돌아와 수년 동안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느헤미야로 옮겨 15년 동안 활동했고 지난해 말 은퇴했습니다.
- 하이델베르크 대학 유학 시절을 상상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신대원 시절 워낙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사회적 대안이 절실했기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기독교경제윤리학자인 울리히 두흐로(Ulrich Duchrow)의 책을 자주 읽고 공부했습니다. 한국에는 《성서의 정치경제학》(한울), 《하느님의 정치경제와 민중운동》(한국신학연구소) 등이 번역 소개되었지요.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두흐로 교수님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독일어를 썩 잘하지 못하던 시절인데 세미나 시간에 용기 내어 대안 사회에 대한 신학적 의견을 말하기도 했는데, 교수님이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격려해주셨죠. 교수님께 박사 지도를 받을 수 있는지 여쭤 보았습니다만, 아쉽게도 당신은 정교수가 아니라서 지도해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후에도 교수님의 세미나에 열심히 참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기서 나눠주신 수업 강의안이 WCC 의제로 사용되는 것을 봤어요. 남미 해방신학자 혼 소브리노(Jon Sobrino)의 기독론으로 학위논문을 쓰려 했지만, 결국 몰트만의 생태신학과 구원론을 연구하고 돌아왔습니다.
- 한국에 와서 활동을 전개하시면서 어떻게 연구와 접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은 한국교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신학 연구가 도움이 되었는지요?
한국의 신학계는 대안 사회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척박하고 협소합니다. 귀국하면 대다수 신진 학자는 생존의 어려움에 내몰립니다.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제도권 학교에 자리를 잡는 일에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귀국하여 현대기독교아카데미(현 현대기독교연구원)를 만들어 다양한 강좌와 세미나를 열기도 했지만, 신학적 작업을 본격적으로 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구상했던 주제들은 ‘사회신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기독교사회형성론’이나 ‘사회적 칼뱅주의’ 그리고 ‘사회의 실재로서 교회’인데요. 이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정리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만, 아직 책을 낼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했던 일 중에 사회적 신학이라고 할 만한 최초의 시도는 느헤미야 학술총서 제1권 《칭의와 정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학자들 글을 모아 제가 책임 편집을 맡았는데요. 요약하자면, 칭의론이 전통적 의미의 “죄 용서의 구원 이론”만이 아니라 정의와 연결된다는 전제로 구성한 학술서입니다. 이번에 저의 은퇴를 기념해 나온 학술총서 제3권 《신학과 사회적 상상력》도 같은 맥락의 결과물이죠.
- 원장님이 느헤미야에서 정년 퇴임하면서 헌정받은 책 《신학과 사회적 상상력》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신다면요?
이 책의 책임 편집은 배덕만 교수가 맡아주셨고, 16명의 신학자가 참여했습니다. 느헤미야 연구위원들과 제가 추천한 동료 학자들이 필진으로 함께했지요. 제1부는 성서와 사회적 상상력, 제2부는 신학과 사회적 상상력, 3부는 복음주의와 사회적 상상력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저는 2부의 한 꼭지를 썼어요. 교의학 주제를 사회적 차원에서 해석하여, 기독교 사회 형성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사회신학을 추구하는 글이지요.
- 약 20년 전, 제가 대학생 때 현대기독교아카데미의 수업과 세미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복음주의 진영이 직면한 사회적 과제를 논의하는 거의 유일한 플랫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곳에서 만난 분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 기억이 납니다. 남산 아래 어느 교회 지하 공간을 무상으로 사용했을 때 뵈었지요. 2004년에 현기아를 설립했을 당시에는 복음주의 진영에 기독교 아카데미가 거의 없었을 때입니다. 후에는 몇몇 아카데미가 생겨났지만요. 현기아를 만들 때, 처음 이름은 ‘현대기독교사회연구소’였습니다. 그만큼 사회적 에토스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를 변화시키려면, 단순히 사회 실천 분야만으로는 역부족이라 생각하여 현대 기독교 사상과 신학을 포괄하는 아카데미가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현대기독교아카데미’로 바꿨습니다. 현재의 단체명은 ‘현대기독연구원’인데요. 이름은 몇 번 바뀌었지만 “사회적 책임의 그리스도인을 양성하고 제자도의 영성을 함양하여 현대 상황에서 기독교 사상을 연구/교육”한다는 설립 목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 신학과 현실 사이에서 오랫동안 깊은 고민을 해오셨는데요. 둘 사이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학과 현실을 연결하는 핵심은 실천 가능성입니다. 성경 메시지가 현대사회의 정의, 평화, 생태 문제와 연결되도록 신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공동선을 실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요. 또한, 신학은 단순히 교회 내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비기독교인들과도 대화할 수 있는 공공신학의 역할을 확장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교회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공공선을 실천하는 중요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죠.
- 오늘(2024.12.31.) 한국 사회는 여전히 12·3 내란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과연 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마음이 듭니다.
교회와 신학계가 사회 이슈에 제때 응답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저도 강단 신학자로서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물론 느헤미야 수강생들은 많이 열려있어서, 수업에서 종종 사회적 논의도 자주 하고 있지만요. 어쨌든 대다수 신학계는 지나치게 체계적이고 규칙적인 학기제로 운영되면서, 급변하는 사회 이슈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신학자들이 적절한 설명과 방향성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과 통로가 부족합니다. 강단 바깥에서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신학적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고, 대중에게 필요한 설명과 해석을 제공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탄핵 정국에서도 극우 기독교 인사들의 내란 옹호 발언이 언론에 보도됩니다. 제주항공 참사에 대해서도 매우 부적절한 말을 쏟아내고 있고요.
정치적 욕구와 주술적 세계관이 결합된 현재의 모습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반헌법적인 정치 행태를 옹호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과 상반됩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종교화된 정치’와 ‘정치화된 종교’의 결과라고 진단하며, 앞으로 기독교가 사회 속에서 시민적 덕을 살리고 공공선을 드러내려면 성서 읽기부터 새롭게 해야 하고, 기존의 신학적 사고를 재구성하는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극적 사건 앞에서 신학자들은 성급하게 의미를 규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흔히 대형 사건이 일어나면 이를 ‘하나님의 뜻’이나 ‘징계’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고통받는 이들에게 오히려 학대와 폭력적 행위가 될 뿐입니다. 대신, 우리가 믿는 십자가를 통해 고통과 함께 연대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고통당한 사람들의 고난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넘어서, 그것을 넘어서는 새 창조의 희망을 말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신학자로서 저는 그 근거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서 5·18을 겪으며 신학적 전향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번에 민주주의를 지키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을 보면서 남다른 소회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매우 보수적인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의 격동적인 정치 상황에 큰 충격을 받았지요.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1980년 봄,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시기에 있었던 한 사건이 제 신학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신학생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서 신학생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거리와 광장에서 격렬한 시위로 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신학생들 앞에서 당시 가장 존경해 마지않던 성경신학자 박윤선 교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이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인용하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는 정치나 사회문제와는 무관한, 영적인 것이요, 영원한 세상에 속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답은 저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런 신학으로는, 기독교가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데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계엄 사태와 관련된 시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20-30대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였습니다. 이들은 사회과학을 공부한 엘리트 운동권이 아니라, 일상에서 불평등과 박탈감을 체감하며 자연스럽게 연대 의식을 형성한 세대였습니다. 특히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외치는 젊은 여성들 모습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대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했던 민주화운동이 오늘날에는 평범한 젊은 세대, 특히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구조 속에서 ‘잉여 인간’이나 ‘박탈당한 세대’로 불리며 살아왔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움직임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희망이자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 앞으로도 신학적 상상력을 빌드업하는 아카데미 운동을 이어가실 텐데요.
제가 신학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 복음이 어떻게 사회적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신학이 현실과 분리된 독백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맞닿아있는 대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 신학, 정의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현대기독교아카데미가 ‘사회적 제자도 학교’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한국 기독교의 공적 역할을 강화하고, 시민적 덕을 가진 신앙인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아카데미 단체들이 있으니 강좌 활동은 그런 단체에 맡기고, 저는 주로 책을 중심으로 하는 강독형 강의와 그때그때 필요한 포럼 등을 개설하려고 합니다.
- 최근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전 3권) 강독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새해 1월부터 3개월간 폴 틸리히 《조직신학》을 진득하게 공부합니다. 폴 틸리히는 ‘상관관계 신학’을 통해 기독교 진리와 인간의 상황을 연결하려 했던 인물입니다. 이번 강독은 《조직신학》이 완전히 번역된 것을 계기 삼아 혼자서는 공부하기 어려운 책을 마스터하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시작했습니다. 오늘까지 30명가량 신청했더군요. ‘신학 덕후’들을 위해 마련한 강독이었는데, 신대원생, 목회자와 더불어 일반 크리스천들도 제법 신청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뜨거운 반응인데요. 앞으로 월요일 저녁에는 본회퍼, 불트만, 판넨베르크, 과정신학, 생태신학(에코페미니즘), 과학신학 등을 강독·강의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다른 요일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 기독교 명저들을 선별해서 한 권 한 권 읽고 공부하는 ‘북스터디 트랙’도 운영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신학과 인문학 책을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니체, 르네 지라르, 월터 윙크, 라인홀드 니버, 한스 큉, 스탠리 하우어워스 등의 책들이죠.
- 수십 년 동안 한국 기독교를 진단하며 신학 아카데미 운동을 해오셨습니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학의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한국 기독교는 과거 근본주의적 신앙에서 자유주의적 신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았죠. 과거에는 기적 신앙이나 주술적 신앙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근본주의는 한편으로 초자연주의적인 경험과 주술적 세계관에 갇혀있거나 아예 세속주의적인 물질과 현세 욕망의 기독교로 흘러가고 있고, 자유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지나치게 이성과 합리성의 틀 안으로 가두려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이 필요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신학의 방향은 급격한 세속화에 직면한 기독교가 초월적 신앙과 궁극적 관심을 추구하면서도 현실 속에서 타당성을 보유하는 그런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모든 현실을 규정하는 힘”이라면, 세속화 시대요 종교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지금 이 시대에서도 주님이 기독교의 진리됨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우리의 현실에서 의미 있는 빛을 던져주기를 소망합니다.
진행 이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