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호 정원의 길, 교회의 길]
겨우내 텅 비었던 수선화 언덕이 진초록 새싹들로 가득하다. 며칠 안으로 이곳은 ‘백만 송이 수선화’라는 팻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꽃들로 가득 덮일 것이다. 소나무 껍질을 곱게 갈아 만든 멀칭으로 말끔하게 덮인 숲 가장자리 화단은 설강화와 헬레보루스, 히아신스가 만개했다. 이른 봄을 깨우는 복수초와 크로커스, 바람꽃 종류와 더불어 새봄의 환희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이 꽃들은 모두 알뿌리, 즉 구근식물이다. 이 식물들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실라(Scilla)라는 꽃이 있다. 백합과(科) 무릇속(屬)에 속한 식물인데, 이맘때면 식물원 화단에 가득 피어 봄 정원을 환하게 빛낸다. 며칠 전 자연주의 정원가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실라가 가득 피어난 고즈넉한 숲속 풍경이었다. 사진을 올린 우크라이나 조경 디자이너는 그곳의 봄도 이 꽃과 함께 시작된다고 적었다. 그런데 숲 한가운데 러시아에서 날아온 미사일이 불발탄이 된 채 박혀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