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호 특집]

위기의 시간

이제는 무감각해질 정도로 진부한 표현이 되었지만, 인류는 사상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지진이나 허리케인처럼 멈출 줄 모르는 자연재해, 대형 화재나 붕괴,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사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비만이나 당뇨 같은 대사 질환 증가, 의학과 과학의 발달에도 사망률 1위인 각종 암, 꾸준히 증가하는 자살률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는 바로 독자 여러분과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의 멸종에 관한 것이다.

‘멸종’이라니,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좋아한다면, 6개의 인피니티 스톤으로 압도적인 힘을 가졌던 타노스조차 인류를 절반밖에 제거하지 못했는데, 타노스보다 더 강력한 빌런에 관한 이야기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음, 그런 식의 접근도 괜찮을 것 같다. 비록 허구의 세계관이지만, 이 글의 주제를 강조하는 방법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만 변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인류가 또 한 번의 대멸종을 초래할 만큼 타노스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동원해서라도 인류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지금,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난 이래 여섯 번째로 맞는 대멸종을 말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 멸종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과 공존하기보다 이기적인 번영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며 열게 된 새로운 지질시대를 (아직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지만) ‘인류세’라고 부른다. 한 번쯤은 들어본 플라이오세, 홀로세 등과 같은 ‘세’(世)가 맞다. 지질학은 연대를 ‘누대’ ‘대’ ‘기’ ‘세’로 구분하는데, 현재와 가장 가까운 ‘대’는 신생대이며, 신생대는 7개의 ‘세’로 나뉜다. 인류세는 그중 마지막인 홀로세의 특정 시점을 구분하여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 시작점을 농경, 산업혁명, 핵실험, 폭발적 인구 증가 등으로 본다. 인간의 활동이 낳은 변화가 인류세를 정의 내리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는 현생누대, 신생대, 제4기, 그리고 인류세에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이름을 붙여 구분하게 된 이유는 인류가 지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라 쓰고 ‘파괴’라 읽는다)시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매년 듣는 기록적 폭염, 역대 최장 열대야, 이제는 익숙해져 별 감흥이 없는 기상이변이나 지구온난화 같은 소식들 역시 모두 인류세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류세는 지구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위기 혹은 파괴) 때문에 붙여진 부정적인 이름이다.

여기서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일 만큼 지구 환경을 파괴한 주범도 인간이지만,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유일한 존재도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 이 글은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나는 인간이 저지른 지구 환경 파괴 행위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짚어본 뒤, 이제 변하자고, 바꾸자고,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자고 촉구하고자 한다.

여섯 번째 대멸종

이쯤 되면 여러분이 느끼는 감정은 어떤가 싶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가 인류세라는 다소 낯선 단어를 통해 우리 인류의 시간적 좌표를 확인하니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조금은 느껴지지 않는가?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관 관장으로 알려진 이정모 작가가 2024년에 쓴 《찬란한 멸종》(다산북스)에는 ‘지질시계’라는 의미심장한 그래프 하나가 실려있다. 46억 년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표현한 시계이다.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30만 년 전에 등장했다. 호모사피엔스의 등장을 지질시계로 나타내면 밤 11시 59분 55초에 해당한다. 24시간 중 마지막 5초 전에 인류가 등장한 셈이다. 이를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하면 마지막 0.6센티미터를 움직이는 것과 같고, 1,000쪽짜리 책에 비유하면 마지막 페이지 맨 아래 한 줄 정도를 읽는 것과 같다. 실로 우리 인류 역사는 장구한 지구 역사에 비하면 명함조차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참고로 지질시계에서 최초의 생명체는 새벽 4시 10분에 등장한다. 육상의 첫 생명체인 식물은 밤 9시 33분에, 공룡은 밤 10시 48분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 5초에 등장한 인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지구 전체를 위협하는 대멸종을 일으키는 걸까? 먼저 마지막 5초가 이전의 5초와는 너무나 달랐다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인류 등장 이전에 있었던 다섯 번의 대멸종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바로 여섯 번째 대멸종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기후변화를 일으킨 주범이 인류라는 사실이다. 이미 허사가 되었지만, 이를 부인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과학자가 인간이 기후변화 주범이라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지질연대표에 따르면, 46억 년 지구 역사는 약 4억 4,40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에 첫 번째 대멸종을 겪었고, 약 3억 5,900만 년 전 데본기 말에 두 번째 대멸종을 겪었다. 약 2억 5,200만 년 전 페름기 말에는 생명체의 95퍼센트가 사라지는 세 번째 대멸종이 있었고, 약 2억 2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에 네 번째 대멸종을 겪었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다섯 번째 대멸종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룡 멸종 시기와 겹치는데, 대략 6,600만 년 전 백악기 말로 추정된다. 다섯 차례의 대멸종 시기를 지질시계에 대입하면, 첫 번째 대멸종은 밤 9시 41분, 두 번째는 밤 10시 7분 41초, 세 번째는 밤 10시 41분 5초, 네 번째는 밤 10시 56분 47초,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대멸종은 밤 11시 39분 20초 정도에 해당한다.

이정모 작가는 인류가 지금처럼 무책임하게 지구 환경을 파괴하며 산다면 길어야 서기 2150년이 되기 전에 (앞으로 125년 남은 셈이다) 인류의 멸종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예측이 현실이 된다면, 인류는 지질시계를 기준으로 지구에 등장한 지 6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 살다가 사라진 생명체로 기록될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자, 단기간에 최대 생물량을 차지하며 최상위 포식자가 된 호모사피엔스에게 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책임

지구가 겪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 모두 주요 원인은 기후변화로 귀결된다. 운석 충돌, 초대륙 형성, 대규모 화산 활동 등 다양한 현상들이 결과적으로 만들어낸 치명적인 현상이 바로 기후변화였다. 대멸종은 단순히 몇몇 종이 사라지는 ‘멸종’과 달리, 전 지구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다양한 생물들이 광범위하고 빠르게 멸종하는 현상이다. 온도가 단 몇 도만 달라져도,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단 몇 퍼센트만 달라져도,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이나 방사선의 양이 조금만 달라져도 생명체가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여섯 번째 대멸종 역시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괜한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가끔 기부도 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왜 ‘인류’라는 단어까지 써가면서 지나친 일반화를 하냐고 한마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원인은 단순히 개인의 생활 습관보다는 사회구조적이고 전 지구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혼자서 아무리 절약하며 살아도 주위의 더 많은 사람이 무분별하게 소비하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대멸종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각이 조금씩 움직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만으로는 대멸종을 일으킬 수는 없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야기하는 원인으로는 광범위한 서식지 파괴, 과도한 사냥과 낚시로 인한 생물종 남획, 대기·수질·토양 오염, 지역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 유입 등 인간이 유발한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이정모 작가는 가장 큰 원인을 지구온난화(혹은 지구 가열화)로 꼽는다. 기후변화의 핵심이 바로 지구 가열화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지구 가열화 역시 인류의 책임이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아니, 인간이 계속해서 지구를 뜨겁게 만들고 있다. 이정모 작가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1년이라는 기간만 보더라도 이미 산업화 이후 기온 상승 폭이 1.64도에 이르렀다. 지구 가열화는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온실가스 중 하나인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는 산업혁명 이후 100년 만에 0.04퍼센트에 이르렀고, 21세기에 들어서는 0.042퍼센트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 수치가 너무 적어 보여서 ‘이 정도 변화가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가 등장하기 전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0.02-0.03퍼센트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1억 6,000만 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 100년 만에 이 수치를 0.04퍼센트까지 끌어올린 인간의 힘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야말로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핵심 요인인 셈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인류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다행스러운 점은, 인간만 변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 죽는다

이미 진행 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을 멈출 수 있을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그렇다’고 답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해결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과거의 성공 사례가 있다. 이정모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인류는 프레온가스 사용을 규제함으로써 남극의 오존 구멍이 커지는 현상을 줄였던 적이 있다. 이는 전 세계가 뜻을 모아 약속을 하고 지킨 결과였다. 이미 풍족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인류가 마음과 뜻만 모으면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석탄 발전 부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G20 국가 중 2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석탄 발전을 이용하며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세계 평균보다 세 배 가까이 많다. 인구수나 면적만 생각하면 미국이나 중국, 인도가 훨씬 높아야 할 것 같은데, 캘리포니아주보다 작은 면적에 인구수 세계 1위인 인도에 비해 약 28분의 1에 불과한 인구수를 가진 우리나라가 호주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력의 상당 부분을 석탄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선진국 반열에 올라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에서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시급히 늘려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참고로 미국은 2023년 기준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통해 전체 전력의 약 15퍼센트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9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와 같은 국가적 노력 외에도, 우리 각자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차가 필요하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여름철에는 에어컨 온도를 1도 올리고, 겨울철에는 히터 온도를 1도 낮추고 두꺼운 옷을 입어 보온을 유지하는 등,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양한 방법이 있다. 대멸종이 이미 진행 중이고 그 주범이 우리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때, 이러한 작은 실천들은 우리가 마땅히 보여야 할 의무일 것이다. 이제는 인간의 이기적인 번영이 아닌, 공멸을 막기 위한 ‘공존’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나 자신부터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다 죽는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권면

《찬란한 멸종》에는 펭귄의 똥, 식물성 플랑크톤, 산호초, 빙하, 얼어붙은 툰드라 지역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쓰여있다. 이런 존재들은 모두 지구의 온실가스를 처리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지구 생태계 균형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존재들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생명체뿐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말이다. 여기서 나는 인간 역시 그 거대한 연결망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인간은 이미 역사상 지구를 가장 많이 착취한 생명체라는 불명예스러운 업적을 남기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 인간에게 지구는 단순히 착취의 대상이나 작업장이 아니라, 삶의 소중한 터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지구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한 부분’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인간은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지만, 죄가 들어온 이후 동물적인 욕망과 이율배반적인 본능에 따라 자기중심적 습성을 발휘하며 타자를 짓밟고 세상에 군림하려는 ‘인간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야기하고 있는 지구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는 바로 그러한 인간스러운 삶의 쓴 열매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 백성이라면, 우리가 구원받아 창조세계 밖 어딘가의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와 함께 그 일부로서 구원받고 구속받는다는 사실을 믿는 하나님 자녀라면, 더욱더 지구 환경 파괴에 저항하고 복원을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새 창조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하신 창조세계로, 즉 하늘이 아닌 땅으로 임하셔서 인간을 시작으로 모든 걸 회복하시는 사건이다. 그렇게 죄와 악이 사라진 그 자리에 하나님의 통치가 다시 임하는 곳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 중간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삶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자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이었던 ‘여호와의 의와 공도를 행하는 삶’이다. 대멸종에 저항하는 우리의 작은 실천이 이러한 윤리적 삶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보여야 할 자발적인 순종의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 이정모 작가의 《찬란한 멸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 짧은 글을 통해 대멸종이나 기후위기 등 과학적인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정모 작가처럼 과학 이야기를 흥미롭고 맛깔나게 풀어내는 과학커뮤니케이터는 흔하지 않다. 그는 이 분야의 정말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글은 재미있고 유쾌하고 유익하다.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고 내용이 쏙쏙 들어와 교양 수준의 과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탁월하다. 생물학 박사학위를 가진 나조차도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멸종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부제인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처럼, 이 책은 지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다양한 생명의 탄생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번의 멸종을 설명해준다. 멸종이 새로운 생명 탄생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또한 이 책만이 가진 독특한 장점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화자는 인공지능인데, 이후로도 여러 생명체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시대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정모 작가는 이러한 영리한 방식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빌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명징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도 놓지 않는다. 아직 지구 기온의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인간은 대멸종을 초래하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내게 남은 메시지를 하나 고르라면 주저 없이 “인간만 변하면 된다”를 꼽겠다. 이 글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그렇다. 인간만 변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뿐이다.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탐욕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간절히 바란다. 편리함이 아닌 불편함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기를. 자본주의와 과학 시대라는 멈추지 않는 기차의 동력에 인간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기를.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모든 다른 생물종처럼 멸종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멸하지 않을 수 있고, 또 공멸의 주범으로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 기회는 아직 우리 손에 있다.

김영웅
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인디애나 의과대학, 시티오브호프 국립암센터에서 연구원 생활을 마쳤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에서 마우스 유전학, 분자세포생물학 등을 기반으로 위, 장, 골수 안의 줄기세포, 암세포, 그들의 미세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과학자의 신앙공부》, 《닮은 듯 다른 우리》, 《생물학자의 신앙고백》(이상 선율),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생각의힘)을 썼고, 《과학과 신학의 대화 Q&A》(IVP)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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