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호 에디터가 고른 책] 《장소에 뿌리내리기》 외 4권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것
신약성서학자 박경미 교수 에세이집. 기후, 경제, 노동, 민주주의, 생태계 등 이 책이 살펴보는 위기는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이 뿌리박고 살아갈 장소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들이다.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장소‘들’을 복원하여 시나브로 평화를 쌓아갈 수 있을지 곧은 자세로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삶의 위기는 민주주의든, 경제성장이든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민중의 평화와 소박한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내게 그 길은 항상 예수에게로 통하는 길이다. … 그는 검소하고 소박하고 순진한 삶을 옹호했으며, 이웃에게 너그럽게 대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오래된 이 길, 예수의 길 외에 다른 길을 잘 알지 못하며, 이제 나는 나의 장소에서 이 말을 번역해 내야 한다.”
강동석 기자
교회, 교회, 교회
일주일에 하루만 교회에 가지만, 평일에도 자주 교회를 생각한다. 교회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풀리지 않고 막히는 부분도 있다. 나 혼자선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그럴 땐 교회 다니는 모든 이가 이 고민을 함께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교회’가 제목에 포함된 세 권의 책을 골랐다. 교회 차원에서의 변화를 촉구하고,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고, 함께 기억하면 좋을 절기에 적합한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다.
여성이 교회에서 많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아직 교회 내 여성 리더십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여성 사역을 지지한다. 다양한 입장을 존중하며 성경에 근거해 여성 리더십의 필요성을 밝히고, 여성이 교회 사역에 온전히 참여할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절로 떠오른다. 교회는 왜 이렇게 차별적인 구조에 놓여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설루션처럼 부록으로 40가지 ‘성경적 평등주의 선언’을 실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들에 대한 개인적 증언도 담고 있다. 성평등한 교회를 그리기 위해 참고하면 좋을, 명료한 말들이다.
“기독교 사역은 권력과 계급이 아닌 사랑과 섬김에 관한 것이다. 계급적이고 지배하려 드는 리더십은 비성경적이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을, 함께 평등한 존재로서, 희생, 겸손, 섬김, 사랑의 삶의 방식으로 부르신다. 함께, 우리는 계급 질서, 가부장제, 권력, 통제를 거부한다.”
17년 동안 평신도교회를 만들고 연구해온 저자가 평신도교회를 한다는 것의 의미와 노하우를 담았다. 평신도교회를 어떤 뜻으로 시작할 수 있는지, 목회자가 없는 평신도교회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예배하고 교제하며 살아가는지를 정리했다. 목회자 중심의 한국교회 배경에서 평신도교회가 지닌 의의를 전하며, 새로운 흐름과 사례를 만들어가기 위한 움직임을 제안한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교회 내 목회자 인식과 교인 역할, 교회를 향한 인식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목회자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전가한 부분은 없는지, 교인으로서 마땅히 누릴 것과 책임질 수 있는 신앙생활은 무엇인지, 교회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함께 모여 떡을 “떼었다”는 것은 떡을 깨뜨렸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우리 위해 자기 몸을 깨뜨리신 분, 그래서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신 분을 기억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억하며,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며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며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 그런 성찬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절기마다 교회 강단에서 전한 설교를 주제별로 모은 책이다. 교회력을 따라 우리가 묵상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쉽게, 감동적으로 전한다. 자칫 잊고 지나칠 수 있는 절기의 의미가 더 특별하게 와닿는 듯하다. 주제를 하나씩 묵상하다 보면 ‘공동체’로서 교회가 왜 모여야 하는지, 함께 신앙생활하며 누리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계절과 시간을 따라 함께 살아가는 교회를 꿈꾸게 하는 책.
정민호 기자
지난해 가을, 부산의 기독교 서점 ‘기쁨의집’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여러 책들 사이로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의 책등이 유독 빛났다. 두 달 전 코린토스 여행 때문이었을까.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1세기 바울 사역의 사회적·문화적 정황 이야기와 사진 자료를 훑어보다 보니, 지난 여행의 기억이 되살아나 행복했다. 그러나 12·3 내란이 터지면서, 책 중간쯤 책갈피가 꽂힌 채로 넉 달이 지났다. 내란 주동자의 파면 후, 다시 책을 읽으려던 참에 같은 저자가 참여한 《아라비아로 간 바울》을 만났다.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경험한 바울이 공적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14년을 다룬 이야기(소설)이다. 그러니까, 내가 재밌게 읽던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의 프리퀄인 셈이다. 넉 달 간의 팽팽하던 마음이 풀린 순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