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호 해외 독자 통신]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독일 부퍼탈 한인선교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정현우입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아내와 눈에 넣을 수 없을 만큼 커버렸지만 정말 넣는다고 해도 하나도 아플 것 같지 않은 세 딸(15살, 9살, 7살)과 함께, 뮌스터(Münster)라는 독일 북서부의 작고 예쁜 도시에서 알콩달콩 오손도손 좌충우돌 생활하고 있습니다.
- 머물고 계신 뮌스터 지역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제가 거주하는 뮌스터는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 Westfalen)주에 위치한 인구 30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입니다. 사실 한국 사람 기준에서나 작지, 독일에서는 인구가 20만 명 이상이면 대도시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도시라고 해야 맞겠네요. 아무튼 도시 대부분이 평지라서 자전거만 타면 어디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자전거의 도시라고도 하고,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교회 종이 울리는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면 그날은 일요일”이라고도 할 만큼 비가 자주 오는 도시입니다. 그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캠퍼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 안에서도 수준 높은 대학의 각 단과들이 도시 전체에 분포해있는 유명한 대학 도시이고요. 추기경이 오랫동안 상주했던 대표적인 가톨릭 도시이기도 합니다.
- 세계사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도시인데요.
역사적으로 봤을 때 무엇보다 가장 유명한 두 사건은 1534년 과격 재침례파들에 의한 뮌스터 반란과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뮌스터 반란은 폭력을 용인했던 일부 극단주의 재침례파 사람들이 뮌스터시에 머물고 있던 주교를 몰아내고 시정을 장악했던 사건입니다. 하지만 반란 내용과 진행 상황을 보면 대다수 군중들의 지지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들로 가득하지요. 예를 들어 반란에 저항하거나 반대했던 가톨릭교도와 무신론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성경의 자의적 해석을 근거로 12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여성을 강제로 혼인시키면서 본인들은 10명 이상의 아내를 두고 이를 거부하는 여성들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사유재산은 폐지하면서 자기들은 성령의 직통 계시를 받는 특별 계층으로 귀족화하면서 호화 생활을 누렸고요. 결국 내분이 일어났고, 이듬해 제국 군대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면서 주모자들은 모두 처형되었습니다. 이때 처형된 반란 주도자들 시신을 뮌스터 시내에 있는 성 람베르트 성당 첨탑에 철창을 매달고 그 안에 넣어 전시해 두었는데, 그 철창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베스트팔렌조약은 독일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유례없는 인명 피해를 냈던 ‘3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평화조약입니다.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많은 분이 아마 들어보셨을 것 같네요. 정치적으로는 최초의 근대적 국제 협약으로 근대국가 체제의 초석이 되었고, 종교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여 일반 민중의 생활 규범이 종교적 교리에서 벗어나는 세속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향후 민주주의 등장에도 영향을 준 중요한 사건인데요. 이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되었던 장소가 바로 뮌스터 옛 시청 건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건물이 베스트팔렌조약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독일이나 주변 유럽 국가로부터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관광지인데, 사실 뭐 한국이나 비유럽 사람들은 딱히 큰 의미를 두지도 않고 관심이 없기도 합니다(웃음).
- 지내시기에는 좋은 도시인가요?
오늘날은 도시의 편리함과 시골의 아늑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비록 한국에서 인지도는 낮지만, 여행이나 유학 등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하나같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인정하는 숨은 명소라고나 할까요?

-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한국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까지 마친 후에 박사 후 연구원(Post-doc)으로 독일에 처음 나왔습니다. 저는 막스 플랑크 협회(Max Planck Society)에 속해있는데요. 이곳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 연구 기관으로, “Insight must precede application”(지식이 반드시 응용을 앞서야 한다)라는 기치를 갖고 있습니다. 전신이었던 카이저 빌헬름 협회(Kaiser-Wilhelm-Gesellschaft) 시기를 포함해 지난 113년 동안 무려 4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단일 기관 세계 1위), 매년 우리나라 전체 기초연구 사업비의 두 배에 가까운 예산을 집행하면서 1만 5천 편 이상 학술 논문을 출판하는 그야말로 ‘넘사벽’ 기초과학 연구 기관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세포 하나하나 단위에서 유전자들의 발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세포가 가지는 특징을 규명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세포는 모든 생명현상의 기초가 되는 구조적·기능적 최소 단위로,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것은 곧 세포가 살아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세포 연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하네요.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이루어져있고, 세포가 없이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으며, 세포 그 자체가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생명현상, 이를테면 생물의 발생이나 성장, 혹은 질병이 생기고 진행되는 과정 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개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이 각각 어떤 기능과 행동을 나타내는지 이해해야 하고, 나아가 서로 다른 세포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수~십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세포들 하나하나에서 3만여 개에 이르는 유전자들이 얼마나 많이 발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게다가 앞서 말한 생명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백, 수천 혹은 수만 개 이상의 세포들을 동시에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실제로 이런 분석 기술이 상용화된 때는 불과 10여 년 전이고, 이전에는 훨씬 부정확하고 파편적인 데이터로부터 어떻게든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단일 세포 유전자 발현 분석 기술 덕분에 과거에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새로운 생물학적 사실들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도 많아졌고, 최근에는 의학, 생명,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 기술로 평가되면서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연구를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진단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임상 진단 기술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번 호 주제가 ‘생명, 력’입니다. 세포 연구자로서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제 박사논문이 ‘신장성 요붕증’이라는 희귀 질환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지금도 모야모야병, 지대근이영양증, 특발성 폐섬유증 등 일반인들은 들어본 적도 없을 법한 희귀 난치성 질환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도 직업의 안과 밖에서 질병과 씨름하고 있다고 할까요? 특히 원인이나 치료 방법이 불분명한 질환들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진단이나 치료법 개발이 저의 사명이자 목표입니다. 희귀 질환은 말 그대로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연구 효율 관점에서 보면 진행해도 남는 게 없는 연구입니다. 치료제를 만들어도 돈이 안 되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연구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환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 이외에도 원인도 모르고, 진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하세월을 보내고, 뾰족한 치료 방법조차 없다는 몇 곱절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죠. 하지만 과학이나 기술이 효율과 경제 논리만 따라가서는 되나요. 양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역설의 신앙을 고백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투병 일기’를 주제로 연재해보고 싶네요. 희귀 질환들 외에도 현대인 누구나 경험하고 있을 치질, 탈모, 거북목, 족저근막염, 역류성 식도염, 아토피, 노안, 충치와 임플란트, 외상성 골절, 디스크, 내성 발톱 등, 하나하나가 주제라서 장기 연재도 가능하…, 아닙니다.

- 복상을 구독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17년부터 해외 정기구독을 했으니, 햇수로 벌써 7년이나 되었네요. 사실 당시에 복상을 구독하게 된 계기가 개인적으로는 좀 아픈 기억이라 (그만큼 또 선명하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잘 풀어낼 수 있을지 살짝 염려가 됩니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제가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일이 어떤 분들에게는 공감과 위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의도치 않은 비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네요. 뭐 그렇다고 대단히 새롭거나 큰 일을 겪은 건 아니고 외국 한인 교회 안에서 흔히 일어나는 뻔한 다툼과 갈등 이슈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로 듣는 것과 그 일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에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었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괴롭고 속상한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있습니다. 아무튼 그 일을 겪으며 외국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에 대해, 교회에 대해, 더 나아가 제가 고백하는 믿음과 진리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어느 순간 스스로를 마치 성숙한 그리스도인, 깨어있는 지식인, 고상하고 도덕적인 어른으로 착각하고 있는 끔찍한 저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어머나! 세상에…).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전부가 아니었고, 제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으며, 저에게는 당연하고 중요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찮을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는데, 여전히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제 자아가 그렇게 하도록 쉬이 허락하지는 않았죠.
이민/유학 생활 자체가 어떻게 보면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이기도 합니다. 제한된 인간관계와 단조로운 삶,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문화 안에 일상이 자칫 매몰되기 쉬운데, 특히 공동체성에 크게 의존하는 신앙생활의 경우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름시름 하던 중에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 그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이야기, 그 사람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복상 해외 정기구독을 시작하게 되었다… 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아무튼 발끝만 보고 걷던 외국에서의 신앙생활 중에 복상 덕분에 고개를 들어 하늘도 올려다보고 한 번씩 주위도 둘러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늘 감사한 마음이고, 저와 비슷한 경험이나 고민을 한 분들께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 한국의 지인들께 선물 증정도 하고 계시죠? 어떤 이유인지 궁금합니다.
외국에 나와 오래 생활하다 보니, 다른 어떤 것보다 한국에 계시는 양가 부모님들께 늘 죄송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특히 손녀들을 많이 보고 싶어 하시고 뭐든 해주고 싶어 하시는데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니까요. 그래도 요즘에는 기술이 많이 좋아져서 영상통화도 자주 하고 사진도 보내드리고 하지만 언제나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부모로서, 신앙인으로서 항상 모범이 되어주시는 정말 훌륭한 분들인데, 외국 생활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아시고 무엇보다 좋은 교회에서 안전하게(?) 신앙생활하지 못할까 봐 늘 염려하십니다. 그래서 매달 복상을 선물 드리는 것으로 저희가 여전히 치열하게 고민하며 힘써 살고 있다는 걸 조금이나마 보여드리고, 직접 깊이 있게 대화 나눌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복상을 읽으면서 같은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게 해주는 끈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 후원이사로 참여해주고 계셔요. 이토록 적극적인 응원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복상을 만드는 분들과 글을 쓰시는 분 중에 저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거나 그냥 제가 팬이라 저 혼자 내적 친밀감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셔서, 아무도 강요한 적 없지만 왠지 복상 구독과 후원은 꼭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발행인 김병년 목사님께는 캠퍼스 선교단체 시절부터 오랫동안 신앙과 믿음에 있어서 제가 많은 빚을 지고 있고, 이전 편집장이셨던 옥명호 잉클링즈 대표님은 같은 교회 공동체에서 신앙 생활했던 식구이자, 제가 옥 대표님 글 덕후라.(웃음) 꽤 오랫동안 ‘반디마을 한몸살이’를 연재하셨던 정동철 전도사님과는 소위 영적 피붙이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만남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분이죠. 과거형인 이유는 제가 그 이후에 저희 아내를 만났기 때문인데, 사실 저희 아내도 정동철 전도사님이 소개해주신 거라 크게 섭섭해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에 복상에서 책도 소개되고, 지난 8월호에 커버스토리 ‘무한대로 향하는 사랑의 역설’을 쓴 김영웅 작가님은 제 대학교-대학원 직속 선배로 20대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절친이자 스승입니다. 과학자로서도, 신앙인으로서도. 그 외에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글을 통해 마주하며 오랜 고민과 깊은 통찰을 기꺼이 공유해준 많은 필자분께 이 기회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복상이 개선했으면 하는 점이 보일 텐데요.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 구독자로서 복상의 내용이나 구성에 대해서는 실무진의 결정을 매번 전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사실 여러가지로 쉽지 않은 상황 가운데에서 적은 인원으로 이렇게 속이 꽉 찬 양질의 월간지를 꾸준히 발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희생을 하고 계실지 감히 짐작 가는 바가 있어, 뭔가를 개선해달라고 말하기가 오히려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꼭 바라는 점이 있다면 〈성서조선〉으로부터 시작된 기독 잡지 출판 운동의 맥을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어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보내드리는 사진은 최근에 찍은 가족사진 몇 장과 제 연구실 책상에 놓여있던 복상을 찍은 한 컷입니다. 연출 하나 없이 그대로 찍은 사진입니다.
진행 이범진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