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호 현장과 사람]

Ⓒ복음과상황 정민호<br>
Ⓒ복음과상황 정민호

기후위기기독인연대 공동대표 두 분과의 인터뷰(2024년 8월·405호)를 마치고, 직업 활동가가 아니라,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문형욱 대표님에게 문의했고, 인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시는 정주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기후위기 대화모임이 열린 날에 인터뷰가 잡혀 인근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학교와 교회, 마을 이야기야말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상 활동의 최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이런 분들이 ‘찐’ 활동가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번에 대화를 나누면서, 이 인터뷰를 직업 활동가에 고정하지 말자고 다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연재 이름도 새롭게 바꿔 보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교사선교회(TEM)라는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13년 차 초등 교사 정주리라고 합니다.

- 복상 구독자라고 들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 교회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는 것에 의문점이 생겼어요. 그런데 복상에서 사회적 약자, 이웃들 이야기를 많이 실어 주더라고요. 저희 남편도 관심이 많아서 함께 읽고 있어요.

- 저는 인터뷰할 때 어린 시절과 그 시절 신앙 이야기를 여쭤보는데요.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교회학교에 다녔어요. 시골에서 자랐는데, 당시엔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이 교회뿐이었어요. 그래서 교회학교에서의 시간이 무척 즐거웠어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부터 고민이 생겼죠. 문화 영역에서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배운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신데, 구약에 기록된 수많은 살인과 심판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이 정말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더욱 커졌습니다.

- 어린 시절 혹은 청년 시절의 신앙생활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제가 고3일 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경선에 나섰어요. 현대사에 관한 책들을 읽다가 이런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졌죠. 당시 노사모 활동도 하고 여러 책도 읽으며 사람들과 만났는데요. 그때 사회구조의 모순에 처음 눈을 떴던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 선교단체 훈련을 받으면서 앞으로는 당장 사회문제에 뛰어들기보단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로 쭉 교사선교회와 연결된 삶을 살고 있어요.

- 교직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나요?

원래 사학과에 가고 싶었는데 형편상 좀 어려웠고요. 초등 교사로 가면 내가 하고 싶은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교대를 선택했어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관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해 5-6학년에 먼저 지원하기도 했고요. 교사선교회 안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디모데 양육’을 학생들과 했어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기 쉽잖아요. 좀 더 바른 가치관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 지금의 기후위기 활동을 하시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으셨나요?

2018년에 5학년을 가르쳤어요. 프로젝트 학습을 준비하면서 환경에 관한 수업을 짜고 있었는데요. 당시 우리나라에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어요. 지금까지 열심히 분리배출했던 쓰레기가 제대로 재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중국의 한 가난한 마을이 나오는 〈플라스틱 차이나〉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선진국에서 버린 쓰레기들이 수입되어 마을로 오는 거예요. 마을 사람들의 업은 쓰레기들을 분류하는 일이었죠. 한 장면에 자기 동생을 등에 업고서 분류와 배출을 하는 아이가 나왔는데, 아이 엄마가 배출된 비닐을 라이터로 태우거든요. 그 장면을 보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저는 첫째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풍요로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제 상황과 달리, 이웃 나라 중국의 어느 마을에 매연을 맡으며 살아야 하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내 삶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br>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 학생들과도 기후위기 관련 활동을 하셨을 텐데요. 학생들을 교육하시면서 경험하는 일들도 궁금합니다. 뿌듯한 점도, 어려운 점도 많으실 텐데요.

첫 번째 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당시 제가 사는 인천 서구에 매립지가 있었는데요. 매립지 시설을 종료시킨다고 발표하면서 서울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논란이 일었어요. 그 무렵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플라스틱방앗간’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페트병 뚜껑은 재질이 달라서 페트병과 같이 재활용되지 않거든요. 뚜껑을 따로 모아 재활용 상품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학교에서 이것부터 시도해 봐야겠다 싶더라고요. 학급에서 플라스틱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뚜껑을 모았어요. 그런데 플라스틱보다 더 재활용이 안 되는 게 종이팩이더라고요. 학교는 급식에 우유가 자주 나와 종이팩 배출량이 상당하거든요. 당연히 전부 업체가 수거해 재활용하겠지 싶었는데, 바로 세척하지 않으면 악취가 심해져 대부분 소각장으로 가더라고요.

우리 반만이라도 종이팩을 모아보자 해서 급식에 우유가 나오면 종이팩을 잘라 물로 헹구고 교실에 가져와서 모았죠. 그리고 주민센터에 보내는 활동을 했어요. 우리 반만 하니까 학교 전체로 봤을 땐 효과가 미미했죠. 학교 전체가 참여해야 효과가 있고 영향력이 생기겠더라고요.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생태 프로그램을 통해 생태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전교생 종이팩을 다 씻겠다고 해버렸어요. 일주일에 우유가 두 번만 나와도 1천 개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양이잖아요. 아무래도 동아리 학생들만으로 다 씻는 건 너무 어려우니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다행히 다른 학생들이 잘 호응해줬어요. 각 반 청소 담당 중 한 명이 자기 반 배출 작업을 해서 재활용 업체에 보내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학생들은 정말 뜨겁게 반응합니다. 지구를 위한 선한 일에 자신이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큰 동기와 자극을 받더라고요. 안타까운 점은 학교에서 이런 활동이 시스템으로 정착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교사는 보통 4-5년마다 근무 학교가 바뀌잖아요? 담당 선생님이 바뀌면 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업무가 사라져서 아쉽다는 차원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향한 사람들 관심이 아직도 너무 부족하구나 싶어 마음이 어려워지기도 해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해 달성할 목표는 너무 많고, 기후위기는 날로 심각해지잖아요. 바뀌지 않는 시스템을 보면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죠.

- 선생님들 인식이 바뀌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문제군요.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을 설득하는 게 더 어렵겠어요.

맞습니다. 저도 활동을 하면서 우리 반만 열심히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거나 마음에 부담을 가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를 먼저 시작했어요. 우월적인 위치에서 전달하는 태도로 하면 더 반발심이 생길 수 있으니, 선생님들 마음을 얻기 위해 정말 낮아지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친환경 선물과 책도 드리면서 연수를 해드렸어요. 제 커리어가 아니라 우리 미래를 위해서 한다는 진정성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죠. 선생님들이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 기후위기기독인연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교직에만 있다 보면 일선의 활동가들을 알기 어려워요. 기후위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심각성은 더욱 크게 다가오는데 제도적인 벽에 부딪히다 보니, 개인 실천이나 공동체 실천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더라고요. 시스템 변화를 요구하는 환경단체에 더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어떤 마인드로 힘든 마음을 견디면서 사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다 2월에 인스타그램에서 그리스도인 동물권 모임을 홍보하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제가 수업 자료로 활용했던 신월리 생추어리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고 하는 거예요. 기독교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구나, 반가운 마음에 참가했습니다. 그 모임에서 기후위기기독인연대 문형욱 대표를 처음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후원도 시작하게 됐고요.

- 활동가들과 만나보니 어떠셨나요?

신월리에 있는 꽃풀소생추어리를 방문했는데, 활동가분이 많이 오셨어요. 수라갯벌을 지키려는 전북녹색연합 활동가 이야기와 가덕도를 지키기 위해 애쓰시는 멸종반란 활동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했어요. 국가 토건 산업에 맞서기가 쉽지 않은데, 생명을 살리기 위해 구속당할 위기까지 감내하면서 모든 걸 던지시는 거잖아요? 힘을 드리고 싶어 후원했다가 사람 수라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밀양이나 삼척 같은 현장에 함께 갔습니다. 활동가들 모습을 보고 발언을 들으면 항상 감동해요. 저는 제가 활동할 때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었거든요. 내 상황은 참 감사한 것이었구나 싶더라고요.

- 기독교 신앙이 선생님의 기후위기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기후위기에 대해 더 알다 보면 개인 실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전체 시스템 내 흐름과 철학의 문제가 있잖아요. 내가 믿는 신앙 안에서 어떻게 해답을 찾아갈까, 많이 고민하죠. 가장 낮고 연약한 자를 통해 일을 이루시는 게 하나님의 방식이잖아요. 중국 쓰레기 마을 사람들도, 공장식 축산에 고통받는 동물들도, 축사 안에서 힘겹게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도 모두 우리 이웃 아닐까요? 이웃 개념이 그렇게 확장된다면, 기독교인들이 이웃들 삶을 어렵게 하는 기후위기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요?

그래서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기후위기 문제가 잘 논의되지 않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져요. 자본주의의 풍요는 복이 아니라 결국 이웃을 착취하는 구조로 귀결됩니다. 우리 메시지가 너무 자본 친화적으로만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다시 읽고 하나님을 다시 발견해가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선한 일을 해나갈 때, 그 일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순종해가는 과정이 큰 힘이 됩니다.

- 다니시는 교회 안에서도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공유하고 함께 활동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인데요. 어르신들이 많은 편입니다. 사실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배어 일회용품 사용이 너무 자연스러우시죠. 그런데 교회에 저보다 기후위기 문제에 더 적극적인 분이 계세요. 교회 안에서도 기후위기 활동을 해보자고 하셔서 《나의 지구를 부탁해》(앵커출판미디어)로 소그룹을 시작했어요. 살림에서 제공하는 워크북으로 성경 공부도 했습니다. 공부 후에는 다 같이 비누 만들기나 바느질 같은 활동도 했고요. 합성세제보다 고체 세제 사용을 권장해 드렸어요. 제가 교회학교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어서, 전년부터 생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매주 주제별 활동을 하는데, 지난주엔 기후정의행진 포스터도 같이 만들었죠. 제가 학교에서 했던 재활용 활동도 하고 있어요. 바라기는, 우리 교회가 마을의 자원순환 거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이 정주리 선생님은 9월 7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br>
인터뷰이 정주리 선생님은 9월 7일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했다.

- 어르신들 반응은 어떠세요?

처음에는 반응이 좀 더뎠어요. 그런데 이런 자원의 낭비로 결국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 손주들 삶이 위험해진다는 데 깊이 공감해 주시더라고요. 원래 검소하게 살아오셨던 분들이라 더 잘 받아들여 주시고, 잘 동참해주시는 걸 보면서 저도 배울 게 많았습니다. 저희 목사님도 이런 활동에 흔쾌히 수긍해 주셨고요. 올해 교회 주제도 ‘생명을 살리는 교회, 녹색교회’로 가자고 의견을 드렸는데 받아주셨어요. 감사했죠.

- 마을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활동해보니 베이스가 되는 공동체가 없다는 점이 아쉽더라고요. 학교와 마을이 하나가 되면 더 많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 텐데, 혼자라서 외롭기도 했어요. 마을과 함께하고 싶어서 일부러 집 근처로 전근 신청을 했습니다. 동네 엄마들과 모임을 해봐야겠다 싶어서요.

놀이터에 자주 나오는 엄마들과 교제를 시작했죠. 교제하면서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몇몇 분들을 만났고, 마을 나눔 장터를 기획해 놀이터에서 하게 됐어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장터를 운영하고 있고요. 엄마들과 놀이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도 진행했습니다. 이 모임이 생각보다 자주 열려, 비건 물품도 선물하고 제로웨이스트에 대해서도 나누었죠. 처음에는 알려줄 게 너무 많다는 생각도 했는데, 오히려 이분들에게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이제는 공동체가 되었어요. 아이들 생일잔치에 서로 초대하고 생일상 음식을 비건으로도 만들어보면서 밥상 교제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교감 선생님께서 텃밭 사용도 허락해주셔서, 마을 텃밭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기독인들에게 기후위기 대응 활동에 대해 권면해 주신다면요.

그리스도인들이 연결성을 좀 더 뚜렷하게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택배 주문으로 너무 쉬운 소비를 남발하거나 무감각하게 음식을 남기는 행위들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그 남기는 음식들을 재배하고 사육하기 위해 투입되는 많은 노동자의 힘겨운 고통, 착취된 토지와 오염되는 물 그리고 버려지는 쓰레기로 많은 생명이 고통받고 있잖아요. 그 고통은 결국 우리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태계가 파괴되어서 폭염이 찾아왔고, 이제 이보다 더한 기후위기 현상들과 식량 위기도 찾아올 텐데요. 우리 삶에 닥칠 이 문제들이 이웃과 생명들의 고통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을 하고 있어도 나에게 익숙해진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삶의 습관들을 좀 더 과감하게 바꿔보기를 권해봅니다. 물론 개인 습관을 바꾸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죠. 그래서 기후정의행진도 하는 것이겠고요. 정부의 기후위기 관련 정책들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있는 자리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무심코 먹는 식탁에 공장식 축산이 연결되어있고, 폭염에 죽어간 생명들의 고통, 과도한 육류 소비로 지속되는 부정의한 학살 등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이 좀 불편해져야 합니다.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감수할 수 있는 것 또한 복음적 삶이라 생각해요. 거기까지 연결할 수 있으면 진정 복음적으로 살고 싶어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결국 가장 먼저 생태주의자가 되지 않을까요?

진행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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