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우리는 노안이 된 듯 멀리 있는 것들을 잘 본다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의 빛이 비추는 동안만큼만. 그러나 가까이에 뭐가 다가오면, 우리 정신은 텅 비어 버려,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 일들을 알 수 없다오.”

단테의 《신곡》(지옥편)에서 과거와 미래 일은 잘 알지만, 현재 일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한 말입니다. 지금 여기, 내 옆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포착하지 못하면서, 먼 미래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아니 본의에 걸맞은 상처를 내고 다니는 사람. 바로 저인데요. 이 지옥에서의 단절된 삶을 청산하고 싶지만, 어제와 내일, 그리고 오늘을 잇는 일상이 늘 버겁습니다.

인류를 향한 사랑과 정의를 외치지만, 정작 지척의 벗과 이웃을 살피지 못하는 제 모습이 이번 커버스토리가 착상된 본진입니다. 저처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조시마 장로가 전하는 서글픈 농담, 즉 “인류 전체를 더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개별적인 사람들, 즉 사람들 개개인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싸늘한 진실로 다가오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거대 담론이나 대의, 인류애에 대한 몰입도 중요하지만, 그 비장함이 이웃, 친구, 동료, 가족으로부터 단절된 데서 온 집착은 아니었는지 헷갈리기도 하는데요.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예수의 메시지를 꽤 단호한 명령으로 받아들인 이번 호 필자·인터뷰이의 고백을 이 지옥을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로 놓아봅니다.

이범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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