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호 사람과 상황]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강승우 목사의 하루는 늘 분주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일을 한다. 식당에서 배달할 음식을 기다릴 땐 주말 설교를 구상한다. 평일에도 교인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해고, 병원 방문, 한국어 소통 등 다양한 이유로 그를 필요로 한다. 태국과 라오스에서 온 이주민들이 강 목사의 교인이기 때문이다.

금요일부터는 교회 사역에만 집중한다. 교인들 직장을 방문하거나 취업을 돕고, 함께 고용센터에 가서 회사 소개를 받고 면접을 본다. 그리고 교회 쉼터에 있는 이들과 식사를 함께한다. 토요일에는 교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함께 탁구 치며 시간을 보낸다.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고, 교인들과 축구를 한다.

강승우 목사는 경기도 양주 은혜가넘치는태국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지는 10년이 되었다. 그전에는 선교사로서 몇 차례 태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선교를 시작한 시점은 2003년, 교회에서 간 단기선교로 처음 태국 땅을 밟았던 때다.  오로지 태국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세월만 20년이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가 되기를 꿈꿨던 그가 어떻게 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이주민 목회를 하게 되었는지 과정이 궁금했다. 7월 5일, 교회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태국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당시의 강승우 목사.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태국 선교지에서 사역하던 당시의 강승우 목사.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1.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에서 목회자 선교사로

강승우 목사는 본래 목회자로서 선교사역을 할 생각은 없었다. 태권도 유단자이자 드럼 전공자인 그는, 그저 말씀을 전하고 양육하는 목회 선교사를 돕고 지원하는 전문인 선교사 역할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왜 지금은 목사로 활동하고 있을까?

두 살부터 교회를 다녔던 그는 중학생 시절 10살 많은 교회 선배의 권유로 두란노 올네이션스 경배와찬양 집회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하스데반 선교사로부터 권면을 받았다. 선교사로 결단할 사람은 손을 들라는 말에, 그는 손을 들었다. 지금도 이 결단을 하나님이 잊지 않았다고, 그는 믿는다.

그가 군 생활을 마친 후에 사건이 터졌다.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사기를 당해 2천만 원이 넘는 빚이 생긴 것이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태권도로 해외에서 성공한 어느 사범의 모습을 보게 됐다. 자신도 해외에 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기도했다.

기도는 2년이 채 안 돼서 현실이 됐다. 태국으로 단기선교를 떠난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태국인들을 보면서 더 큰 마음을 갖게 됐다. 낙후된 나라인 줄만 알고 갔는데, 장래 희망을 품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만났다. 태국인을 향한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교단에서 선교 훈련을 받아 태국 선교사로 파송됐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발생한 갈등 때문에 오래 있지 못하고 귀국하게 됐다.

강 목사가 선교지에서 평신도로서 선임 선교사였던 목사를 도와 1년 가까이 사역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새로운 예배당 건축이 완료됐을 즈음 선임 선교사에게서, 교회에서 어린이집 사역을 하는 초신자 선생님 두 명을 해고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유인즉, 다른 교인들이 예배당도 새로 건축돼서 교회가 부흥해야 하는데 어린이집 사역을 초신자가 맡고 있어서 발전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선임 선교사를 말리면서, 안 믿는 사람에게 복음을 잘 전하려고 예배당도 지은 것이고 두 사람 모두 교회에 잘 나오고 있으니, 해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주일에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을 정리하던 중, 그 두 사람이 ‘당신이 우리를 해고하라고 했느냐’고 항의를 해왔다. 선임 선교사로부터 그렇게 들었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곧바로 선임 선교사에게 전화해서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빨리 와서 해명해달라고 따졌더니, 목사의 말에 순종하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것은 그에게 순종이 아닌 진실과 거짓의 문제였다. 파송교회에 알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파송교회의 선교부 목사에게 전화했더니, 그 목사는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선교부에서는 강승우 목사가 사역지를 떠나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자원선교사는 매년 선교 여부를 갱신해야 하는데, 마침 그다음 달이 계약을 연장하는 달이었다. 선임 선교사도 계약 연장을 도와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때 그는 선교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선교를 왜 하는 것일까. 왜 교인을 쫓아낼까. 태국은 왜 복음화율이 1%도 안 되는가….’ 그때 묵상하던 말씀 중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잠언 19:2) 선교를 준비하고 훈련받을 때 전문인으로서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섬기겠다고 마음먹고, 목사가 되라는 주변 권유도 거절한 그였다. 그는 잠언 말씀을 ‘말씀 없는 소원은 잘못된 것이므로 오히려 돌아가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태국 땅에 필요한 것은 태권도도 음악도 전문 기술도 아니고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신학을 해서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선임 선교사와의 갈등을 지켜본 이들은, 그에게 선교사역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고 싶으면 목회자가 돼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그와 선임 선교사의 갈등을 들었을 때 선임 선교사 편을 들어준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교단 관계자도 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목사냐, 아니냐’가 교회 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게 된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5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태국에 다시 들어가고자 했다. 파송을 받고 목사 안수, 선교 훈련을 거쳤는데, 선교단체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가 한국어를 잘 못하는 태국인이고 선교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추후 다른 선교사를 통해, 자신과 갈등을 겪은 선임 선교사가 선교단체에 강승우 목사를 받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 거절의 실제 이유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몇 년 후 다른 선교단체를 통해 태국으로 갔지만, 거기서도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여느 선교사들이 그렇듯, 기존 선교사와 갈등을 겪고 사역 입지가 좁아져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강승우 목사는 다 같이 선교사역을 하면서, 왜 사람이 사람을 이다지도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못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2. 한국에서 이주민 목회를 시작하다

강승우 목사는 선교지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두 달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결국 해외 선교를 포기하고 국내 태국인을 대상으로 사역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2018년, 태국인 이주민 사역을 하는 분이 없는 곳에서 교회를 시작하려 했다. 조사 끝에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며칠 뒤, 근처에 태국교회가 존재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어느 베트남교회 예배당을 빌려 사역하는 선교사님이 있었다. 상의하면서 잘해보자고 이야기를 나눈 뒤 사역을 시작했다.

포천에서의 사역은 쉽지 않았다. 교인들이 두 교회를 비교하면서 다른 교회로 가는 일이 잦았다. 2022년 10월, 어느 선교사님에게 태국어 잘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양주시 가래비길이었다. 그곳엔 태국교회가 없었다. 예배당이 들어설 장소를 알아보고, 양주에서 교회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3. 쉼터 사역

강 목사는 실직하거나 아픈 이주민을 위한 쉼터 사역을 시작했다. 은혜가넘치는태국교회 예배당에는 세 개의 방이 있다. 그중 한 개는 목양실로, 두 개는 이주민을 위한 쉼터로 사용된다. 이용자가 많은 날에는 목양실도 쉼터로 이용된다. 쉼터 사역은 단순히 그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회에 머무는 동안 찬양을 듣게 하고, 교인들과 말을 섞고 친밀감을 형성한다. 함께 외부 행사나 구직 활동을 다니며, 교회가 그들을 섬길 다양한 기회를 만드는 사역이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복음과상황 정민호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복음과상황 정민호

- 쉼터 사역을 시작할 때 마음속으로 그렸던 모델 같은 게 있으셨는지요?

저에게 쉼터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비용을 지출하지 않은 채 원하는 만큼 머물며 보호받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제가 쉼터를 운영하게 된 건 태국인·라오스인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초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구심적 선교를 위해서였습니다. 교회 밖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원심적 선교도 있지만, 그들을 교회로 오게끔 하는 방법을 찾았죠. 쉼터는 이용자들을 고려해서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쉼터를 운영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올 1월 초 어느 태국인 형제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해고가 됐는데, 갈 곳이 없다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로 오라고 했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1.5리터 생수병 하나가 들려있었어요. 그 광경을 보고 울컥했죠. 사막에서 목말라 죽지 않기 위해 남겨놓은 물을 들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직 식사도 하지 않았던 그분께 저녁을 차려주며 대화를 나눴어요. 그분은 한국에 친구도, 지인도 없어서 정말 갈 곳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제 명함을 얻어 전화한 것이었죠.

쉼터 사역을 하면서 품은 소망이 하나 있어요. 이곳에 오는 모든 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는 거죠. 제가 직접 태국 요리를 할 순 없지만,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여러 식재료를 준비해둡니다. 교회 재정이 부족해 양이 넉넉하지 않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릴 뿐이죠.

목양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목양실. ⓒ복음과상황 정민호

그는 쉼터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을 도왔지만, 누군가는 말도 없이 떠났다. 교회에 나온 교인들도 자기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떠났다.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할 순 없었다. 신앙을 강요할 수도 없었다.

교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쉼터에 사람들을 받지 말자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었다.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공간을 내주어도 분위기만 망치고, 전기세와 수도세만 늘고, 교회 음식도 다 먹어버린다는 불만이었다. 이런 문제로 교인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강 목사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누군가의 헌신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처럼, 여기 온 사람 중 누군가도 회심하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이 만남을 통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교인들을 설득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4. 이주민 교인들의 삶

태국 출신 이주민은 주로 경기도 양주, 포천, 동두천, 의정부, 파주, 김포, 부천과 인천 등 수도권 외곽 공업단지 주변에 많이 거주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태국인은 약 20만 명이며, 그중 비자를 가진 이주민은 4만 명 정도다. 대다수 태국인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다. 보통 아침 7시부터 약 12시간 동안 일한다. 비자가 있으면 최저시급보다 높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정부가 정한 근무시간만 일할 수 있다. 미등록 이주민은 임금이 그보다 낮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한다.

은혜가넘치는태국교회 예배 풍경.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은혜가넘치는태국교회 예배 풍경.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 이주민 교인들 생활을 돕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비정기적인 사역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자리를 원하는 교인들의 취업을 돕는 일입니다. 만약 제가 취업을 돕지 않으면, 이분들은 고용센터에서 소개받은 회사를 방문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쓰고 맙니다.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채용 정보 때문에 헛걸음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과 함께 고용센터에 방문해서 소개받은 회사로 이동하기 전 구인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등 취업 과정을 돕죠.

그날 교회에 온 라오스인은 공장에서 5개월간 일한 사람이었다.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없는데, 회사는 이를 꾀병으로 여기고 있었다. 강 목사는 그와 동행하여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척추뼈가 선천적으로 일자로 되어있어 무거운 것을 들면 안 된다고 진단했다. 이후 강 목사가 회사 담당자와 통화했지만, 이직을 원한다는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는 치료해 주겠다고만 했다. 여전히 그가 꾀병을 부린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강승우 목사는 교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종종 고용센터에 방문한다.
강승우 목사는 교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종종 고용센터에 방문한다.

- 교인들을 대변해서 회사 담당자들과 문제를 해결하는 게 힘들진 않으세요?

물론 저는 교회 목사니까 갈등이나 다툼 상황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교우들이 밀린 월급을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병원에 같이가자고 하고, 대신 얘기해달라고 하면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개입해도 되는 건가?’ 그러면 결국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제가 대신 싸우게 되죠. 그러다 보면 한국인 사장님들이 저를 피하고 만나기 싫어하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솔직히 하기 싫은 일이죠.

인터넷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요. 불법 체류자가 많다고. 잡아가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막 비난해요. 우리는 한국에 온 사람들을 보호해주고, 인권을 지켜주고,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그들이 건강하게 잘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에요. 가능하다면 태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물론 정부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직장을 소개해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이동을 돕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일이 필요할 땐 저도 딜레마를 겪기도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복음과상황 정민호

5. 사역은 계속된다

강 목사는 지난 4년간 정수기 렌탈 관리 일을 했다. 현재는 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다. 평일에 시간이 날 때마다 하지만, 공황장애 때문에 오랜 시간 일을 할 수는 없다.

평일의 일과 목회 사역을 병행하시느라 바쁘신데요. 이와 관련해서 바라시는 게 있으실까요?
제 바람은 교회에 많은 사람이 오는 것뿐이에요. 교인 수에 집착하는 건 아닙니다. 교우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여태까지 교회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해요. 본국에서 교회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태국에 더 많은 교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한국에 이민해온 태국인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갖게 되어 본국으로 파송되길 바랍니다.

- 교인들 필요에 따라 움직이다 보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 더 힘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교회에는 예배 후 소모임을 이끌 수 있는 현지인 사역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태국어가 가능하니까 직접 인도할 수 있지만, 소모임을 이끌 때 필요한 걸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요. 자유자재로 의사소통하기에도 부족한 면이 있죠.

그리고 한국어 공부를 할 때 교인마다 언어능력이 달라서 제각각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고 싶기도 해요. 선생님이 여러 명이라면 교인분들이 좋은 환경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교회 사정은 어때요?

교회 재정이 그리 좋지 않아요. 오늘로 3개월째 월세가 밀려있어요. 50만 원씩 3개월, 150만 원이죠. 물론 힘들지만, 이런 힘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고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도와주실 거라 믿고 있어요.

- 교인분들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나요?

교인 중에는 단돈 얼마 때문에 직장을 옮기시는 분들도 있어요. 월급이 몇 달 밀려있어도 그걸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기도 하죠. 돈에 민감한 겁니다. 본국 가족들에게 급여를 거의 다 보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빚 있는 친구도 많아요. 돈을 벌어도 본인들은 잘 쓰지도 않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건 좋은데, 때론 너무 무리해서 아픈 사람도 있죠. 헌금 생활을 기대하기란 사실 너무 어렵습니다. 최대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일하면서, 더불어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태국으로, 라오스로 돌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진행 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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