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커버스토리]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포럼’ 로버트 뱅크스 박사 강연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말씀을 갖고 있으며(고전 14:26), 온갖 지혜로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골 3:16)이 초대교회의 가르침이었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를 쓴 오스트레일리아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7월 31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열린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포럼’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

평신도교회 공부모임에서 주최한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포럼은 오늘날 평신도교회의 전망을 논의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초대교회 모습을 회복할 것인지 성찰하기 위해 개최했다. 평신도교회 공부모임은 평신도교회와 이에 관심 있는 신자들이 모여 2021년도 꾸려졌는데, 크게 세 가치에 뜻을 모으고 있다. 하나, 사도신경이 밝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 둘, 평신도와 목회자라는 수직적 이원구조를 극복하며 설교를 목사의 전유물로 보지 않고 모든 신자들이 말씀을 공적으로 나누는 일이 가능하다고 고백하는 것. 셋, 교회가 세상의 고통에 응답하는 타자 지향성을 가진 공동체라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 ‘평신도교회 공부모임’에 콘텐츠를 공유해오면서 앞으로 연 2회 신학포럼을 열기로 했다. 특별히 첫 포럼에 로버트 뱅크스 박사를 초청한 까닭은 그가 기독교 공동체의 본질을 돌아보는 저작을 많이 써왔고, 초대교회 모습과 평신도교회에 대한 관심을 꾸준하게 이어온 학자이기 때문이다.

평신도교회 연합 ‘수평적 교회들’, IVP, 복음과상황이 협력한 이번 포럼은 신청자가 100명이 넘었으며 실시간 접속자로 80여 명이 들어왔다. 평신도교회 공부모임 소속 송인수 교육의봄 공동대표가 사회를 맡았고, 김종호 IFES 동아시아 지역 부총무(본지 이사)가 통역했다. 포럼은 3시간 정도 진행됐는데, 90분은 로버트 뱅크스 박사 강연으로 채워졌고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로버트 뱅크스 박사. (사진: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 포럼)
로버트 뱅크스 박사. (사진: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 포럼)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1969년 성공회 사제직을 내려놓고 평신도교회를 시작해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다.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로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그이지만 신앙 배경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다.

1939년 시드니에서 태어난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신앙이 거의 없다시피 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러다 여러 계기로 믿음을 갖게 되면서 개혁주의(칼뱅주의) 신학을 공부했다. 공부를 마친 후 사역하면서는 바울서신과 사도행전 등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특징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신약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에는 스위스를 방문해 에두아르트 슈바이처(Eduard Schweizer) 박사와 개혁주의자였던 에밀 브루너를 알게 되었다. 신앙고백에 있어서는 루터나 칼뱅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교회관에서는 차이를 보였던 16세기 종교개혁자들에게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장의자에 앉아 앞만 쳐다보면서 목사의 설교에 ‘아멘’ 하는 오늘날 교회와 소박한 공간에 둘러앉아 마주보고 대화했던 초대교회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발견했다.

이것이 목회자가 아닌 한 사람의 신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정하게 된 배경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평신도교회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한 개의 그룹이었지만 점차 불어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평소에는 대여섯 가정이 속한 각 그룹이 가정교회처럼 따로 모이지만,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전체 네트워크 모임으로 만난다. 공간을 대여하거나 공원에서 만나는 식이다. 처음엔 기성교회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고, 많은 교회로부터 비난과 오해, 정죄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우리에 대해 건강한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 나타났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예배당 바깥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사명을 실천하고 있는지 지켜보던 이들이었다. 기성교회라는 환경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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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로버트 뱅크스 박사가 책을 집필한 계기도 평신도교회와 관련해 읽을 만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는 이들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바울의 교회관에 대해 살펴보는 《바울의 공동체 사상》을 시작으로, 1세기 초대교회 현장의 작은 이야기들을 읽고 나눌 수 있도록 돕는 ‘1세기 기독교 시리즈’(《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가정교회를 세우는 실제적인 아이디어들을 제공하는 《교회, 또 하나의 가족》(이상 IVP) 등을 펴냈다.

그러나 평신도교회를 향한 비판 중 안수받은 목회자가 없는데 어떻게 교회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존재한다. 이에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평신도와 사역자를 구분하게 된 시점은 주후 3세기 전부터라고 반박했다.

지난 20년간 출간된 도서 중 가장 흥미로운 책 가운데 하나인, 가톨릭 학자 알렉상드르 파브레(Alexandre Faivre)의 《The Emergence of the Laity in the Early Church(초대교회 평신도의 등장)》를 보면 이것이 잘 나타난다. 1세기에서 2세기 반 동안 모든 교회는 평신도들이 인도하는 교회였다. 에드먼드 해머 브로드벤트(E. H. Brodbent)가 쓴 《Pilgrim Church(순례자 교회)》는 역사 속에 등장한 다양한 형태의 평신도교회들을 소개한다. 16세기 종교개혁이 이뤄졌을 때, 몇몇 근본적인 개혁주의자뿐 아니라 위대한 종교개혁자였던 마르틴 루터도 가톨릭교회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아닌 평신도교회를 이상적인 교회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평생 구현하고 싶었으나 구현하지 못했다. 진정한 교회란 성령의 임재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방식에 따라 정기적으로 만나 하나님을 높이는 만남이지, 공적인 집회 형태를 띨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신약학자 에두아르트 슈바이처는 《The Church as the Body of Christ(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서 초대교회가 드린 예배에 대해 설명한다. 신약시대 때 예배로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들이 연기하고 나머지는 관객이 되어버리는 연극이 아니었다. 모든 멤버들이 자신의 은사를 통해 기여하고 이야기하며 참여하는 곳이 예배의 자리였다.

평소 먹던 음식으로 진행하는 평신도교회의 성찬을 교회의 성찬으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도 있다. 예전을 위해 따로 준비한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는 점이 그 이유다. 이에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성경 속 예수가 나눴던 빵과 포도주는 당시 그들이 먹던 일상적인 음식이었다고 설명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성찬이 너무 형식화되고 예식화돼서, 일상적인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을 성찬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초대교회나 성경을 보면 오히려 일상 음식을 나누는 것이 성찬의 본모습이고,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이 교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하나, 평신도교회에 대해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다.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이 설교에 참여할 수 있을까?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한국교회에서 반드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는 ‘설교’(preaching)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설교(preaching)와 가르침(teaching) 사이에는 뚜렷한 쓰임의 차이가 있었다. 헬라어 ‘케리그마’(Kerygma)를 번역한 설교는 신약시대에 교회 안에서 단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 늘 예배당 바깥에서 불신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의미했다. 교회 안에서는 가르침 혹은 예언(prophecy)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과거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던 말씀이 현재 우리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알려주는 메시지를 뜻한다. 한편 예언은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현재 상황에서 하나님이 뜻을 밝혀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르침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참여한 활동이었다. 사도행전 20:7-11에도 이것이 잘 나타난다. 바울은 자신으로 인해 세워진 드로아라는 지역의 교회를 다시 방문하는데, 사람들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고 결국 날을 샌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강론한다(preached to them)고 번역돼있지만, 원래 단어로는 대화(dialogued with them)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고 나온다. 일방적인 독백과 설교가 아니었다.

나아가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오늘날 평신도들이 실제적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나누기 위해 교회들이 적용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우선,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사람이 결론을 내거나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서 말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만 던지는 방식’이 있다. 인도자는 주석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도 사전에 성경 본문을 읽고 이를 어떻게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사전에 필요하다. 또, 오랜 기간 자신이 씨름했던 문제를 통해 깨달은 바를 교회에서 나누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고백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떤 한 가정이나 한 개인이 큰 고민이 생겼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교인들에게 지혜를 구하면서 사람들 생각을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연극 형태로 만들어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역할을 맡아 상황극을 해보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 글로만 읽을 때가 아니라 연기할 때 배우는 게 있고 이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교회가 유념해야 할 것은 없을까. 목사 없는 교회가 갖고 있는 장점과 유익이 있지만, 자기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목사가 없을 때 생기는 빈자리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로버트 뱅크스 박사는 강조했다.

이를 채우기 위해서는 서로가 남의 짐을 져야 한다(갈 6:2).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 모아 함께 기도하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이 각 집에서 따로 모이고 있었고(20:20), 특정 지도자가 교회마다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함께 모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특정한 분별과 말씀의 위로들을 경험했다. 또 고린도전서 16:15-16을 보면 스데바나의 가정은 아가야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친 가정으로 소개되는데,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고 함께 수고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평신도교회에는 목사는 물론 ‘섬기는 리더’(servant leader)도 없다. 이끄는 종들(leading servants)이 있을 뿐이다. 이들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위에서 아랫사람들을 돌보고 이끄는 존재가 아니다.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섬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직함·지위·자리·권한에 관심 두지 않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이끄는 교회가 평신도교회다.

&nbsp;(이하 사진: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 포럼)
 (이하 사진: 제1회 평신도교회 신학 포럼)

청중과의 질의응답

-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 형태를 지향해 평신도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게 아니라면 평신도교회는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나.

많은 교회들이 평신도교회를 재발견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조직의 전통이 있고, 목회를 하기 위해 벌려놓은 투자들이 많다. 무엇보다 성도들이 분주하게 사느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기성교회가 크게 변할 것이라는 소망은 갖고 있지 않지만, 남겨진 그리고 변방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이 커질 것이라고 본다. 특별히 박해가 심한 곳에서 신앙생활하는 이들의 경우 가정교회가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 모습들을 생각할 때 가정교회는 앞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 있을 것이고, 선지자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 신학적 훈련을 받은 성직자 없이 평신도교회가 성경 해석을 할 때 오류를 범하거나 이단에 빠지진 않을까. 공동체마다 혹은 내부에서 해석에 대한 차이가 생길 수 있는데, 목회자가 없는 평신도교회에서 이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우선, 평신도 그룹 내부에 신학적으로 박식하거나 배경지식을 가진 분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잘 배우셨거나 신학교에서 전임 사역하는 목사보다 많은 신학 서적들을 읽은 분들인데, 이들이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평신도들에게도 충분히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살고 싶다는 갈망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교회를 나가는 건데, 그런 자리에서 자꾸 엉뚱한 소리가 나온다면 자연스레 의구심이 들 것이다. 그럴 때 생각들을 나누면서 충분히 분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신앙적인 이슈들이 있다면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통역을 맡은 김종호 이사
통역을 맡은 김종호 이사

- 평신도교회가 목사 없이 어떻게 성찬이나 세례를 진행할 수 있나.

우선, 성경 어느 곳에서도 성찬이나 세례를 집례하는 데 목사가 필요하다는 구절은 없다. 두 번째로, 평신도들이 성찬과 세례가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면서도 정리해볼 수 있다. 성경은 물론 많은 연구와 저술들이 있지 않나. 루터 역시 평신도들이 세련되고 정돈된 방식으로 성찬과 세례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찬의 의미는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고, 그분이 곁에 계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고, 우리를 통해 우리 각자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하나 된 우리가 세상에서 그를 섬기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전혀 어렵지 않고, 이를 알기 위해 신학교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

- 어떻게 평신도교회를 향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배울 수 있는 게 있겠다고 느끼게 만들었나.

평신도교회에 흥미로운 점이 있고 배울 만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우선 지역사회에서 기독교 관련 행사를 진행할 때 우리는 항상 참여했다. 기성교회보다 훨씬 더 많이 참여했는데, 그걸 인상 깊게 본 것 같다. 기성교회를 무조건 비판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함께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느끼길 바랐다.

두 번째로, 지역사회 봉사활동 현장에 평신도교회 사람들이 꾸준히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가난한 노인들에게 음식을 마련해주는 봉사활동이 있었다. 그걸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우리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던 것 같다.

또, 평신도교회가 연례 연합 수련회를 할 때 기성교회와 교단 사람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는데, 우리에게 의구심을 갖고 있거나 비판적인 분들도 있었다. 자유롭게 강의하면 되고 우리를 비판해도 좋다고 얘기했다. 수련회가 끝나고 평신도교회에 대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더라. 자기를 대하는 방식과 우리와 나눈 대화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 저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를 보면, 주인공이 예배를 갔다가 당황해한다. 종교적 내용이나 예전의 틀, 그리고 사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어떤 종교적인 것을 만난다. 그가 만난 ‘종교성’이란 무엇일까.

신약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초대교회 모임이 ‘예배’라는 이름으로 묘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배라는 생각으로, 또 예배라는 형식으로 모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신학적으로 자명하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일상의 모든 현장이 다 거룩한 곳이었다.

교회는 물론 가정과 일터, 일상생활 영역과 정치적인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 속에도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이 모든 상황들을 인지하고 계신다고 믿었다. 로마서 12:1-2은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고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신령한 예배라고 말한다. 즉 우리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대한 희생이며 제사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배가 일상과 구별되어 더 종교적이고 신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을 신학적으로도 무너뜨린 장본인 중 하나가 마르틴 루터다. 그는 치과의사가 충치를 치료하는 것은 주일날 예배당에서 성직자가 설교하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 기쁜 일이며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속의 구분을 없애고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깨달은 그는,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일상의 모든 것을 거룩한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제사장이라고 여겼다.

사회자 송인수 교육의봄 대표
사회자 송인수 교육의봄 대표

- 16세기 당시 아나뱁티스트 운동과 메노나이트 교회도 평신도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평신도교회는 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

아나뱁티스트는 교회가 교회 되는 표지로 말씀의 선포, 성례전, 사랑, 권징을 이야기하는 등 굉장히 중요한 교회의 본질을 간파했지만,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너무 집중해 바깥세상을 거부하고 담을 쌓은 면도 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고 그 역할을 하도록 파송받았는데, 오염된 세상과 거리를 두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한편, 평신도교회가 관심을 가진 초대교회는 서로를 챙기고 돌보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고자 하셨던 이 세상 전체를 향해 관심을 가졌다. 지역사회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독려하고 공동체를 세워가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아가 교회는 정부가 어떻게 더정직하고 정의롭게 자기 역할을 잘해서 시민들을 돌볼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졌다.

-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했던 초대교회 사람들의 모습은 이상적인 배움의 자세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를 따르기 위해 오늘날 평신도교회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이 있을까.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오늘날 평신도교회들은 기성교회 예배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만날 필요가 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예수가 했던 방식으로 관계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웃으로, 직장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안녕을 진정으로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수 김종호 이사
정리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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