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필립 슈페너로부터 시작된 독일 경건주의 운동은 니콜라우스 친첸도르프 백작이 계승했다. 친첸도르프는 슈페너가 죽기 5년 전 1700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귀족 집안 출신인 그는 외할머니 헨리에테 카타리나 손에 자랐다. 외할머니는 슈페너와 경건주의 운동을 적극 지지했으며, 자국어 성경 번역을 추진하고, 소녀들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 등 종교와 사회의 개혁에 힘을 쏟았다. 슈페너가 친첸도르프의 대부가 된 것도 외할머니 덕분이었다.
친첸도르프는 어린 시절 경건주의 요람이었던 할레(Halle)에서 아우구스트 프랑케로부터 감화를 받고, 1716년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가 법학을 공부했다. 그 후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하며 다양한 신앙 전통을 접했다. 후일 그는 뒤셀도르프 박물관에서 도메니코 페티의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를 보면서 회심을 경험했다고 회고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분을 사랑했지만, 실제로 그분을 위해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그분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1722년 친첸도르프는 모라비아 형제들을 만났다. 이들은 얀 후스의 후예로 모라비아와 보헤미아 지역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친첸도르프는 작센에 있는 자기 영지로 이들을 받아들여 ‘헤른후트’(Herrnhut) 공동체를 만들어 경건주의를 실험했다. 헤른후트는 ‘주님이 보호하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른후트는 박해받는 사람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피난처가 되었다.
〔그림1〕은 헤른후트에 있는 친첸도르프 집이다. 1721년 세워진 이 집의 문 위에는 스가랴 9:12과 고린도후서 5:1-2이 적혀있다. 친첸도르프는 땅에 있는 집은 우리가 나그네로서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기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했다. 집 내부는 그의 생애와 사역을 소개하는 작은 박물관 역할을 한다.
〔그림2〕와 〔그림3〕은 헤른후트 예배당 외부와 내부의 모습이다. 소박하고 단순한 구조가 모라비아 형제단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친첸도르프는 ‘말씀’ ‘기도’라는 두 기둥에 기초한 ‘형제애적 일치’(Brüderlicher Vertrag) 문서를 작성했고, 모라비아 형제들은 1727년 5월 12일 서명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삶을 위한 모라비아 형제들의 언약’ 혹은 ‘헤른후트 형제들의 언약’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1727년 8월 13일 ‘모라비아 형제들의 오순절’이라 불리는 영적 갱신을 경험했다.
헤른후트 공동체에는 매일 말씀으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 말씀묵상집이 있는데, 바로 ‘로중’(Losungen)이다. 로중은 군사 용어로 ‘암구호’를 뜻한다. 전투에 나서는 군인이 피아 식별을 위해 암구호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갈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필수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로중은 1731년부터 거의 300년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탱하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국내에도 2009년부터 로중이 우리말로 번역 소개되고 있다. 로중은 6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어 100개국 이상에 전해져 200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헤른후트 공동체를 떠받치는 또 다른 기둥은 기도이다. 형제단은 1727년부터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계속 이어가는 기도 운동을 100년 이상 전개했다. 기도는 다양한 신앙을 가진 헤른후트의 피난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시켰다. 또한 헤른후트를 선교 공동체로 만들었다. 1732년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이후 30여 년 동안 카리브해, 아메리카, 아프리카, 북극, 극동 지역 등 세계 각지로 수백 명의 평신도 선교사를 파송했다. 친첸도르프 자신도 ‘필그림 백작’이라 불리며 서인도제도, 아메리카 등 세계를 무대로 복음을 전했다. 헤른후트 공동체는 18세기 개신교 선교 요람이자 본부였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모라비아 형제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