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커버스토리]

저는 환경운동단체에서 상근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만 7년을 생태계와 환경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화성시 지역을 근거로 두고 지역적이면서 지구적인 활동을 하게 된 것은 큰 축복입니다. 제 활동 바탕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JPIC) 정신, 곧 창조신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며 만난 생명들과 경험, 저의 감정과 소망을 도요·물떼새를 중심으로 짧게나마 소개하려 합니다.

지구여행자 ‘도요·물떼새’

환경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 존재가 여럿입니다. 그중 가장 애틋이 여기는 종은 도요·물떼새입니다. 도요·물떼새는 도요새류와 물떼새류를 통칭하는 말이며 주로 바닷가·갯벌·강변 등에 의존해 사는 물새의 대표 격으로 영어로는 shorebird라 합니다. 한국에 도래하는 도요·물떼새만 40종이 넘는데요. 모두 크기와 생김새, 먹이, 서식 환경 등이 다 다릅니다.

도요·물떼새는 지구를 여행합니다. 그중에서도 큰뒷부리도요는 현존하는 새 중에서 가장 먼 거리를 오가는 새입니다. 오스트랄라시아(호주·뉴질랜드·멜라네시아 등지)와 툰드라(알래스카~추콧카·캄차카·시베리아 등지)를 매해 오갑니다. 지구상에 철새가 이동하는 길이 크게 9개 있는데요. 이 중 가장 많은 새가 이용하는 경로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East Asia-Australasia Flyway·EAAF)입니다. 우리 한반도가 이 길의 거의 한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철새들은 번식기(여름)엔 북쪽에서 지내고 비번식기(겨울)는 남쪽에서 보냅니다.

지난해 봄, 화성호에서 쉬고 있는 도요·물떼새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지난해 봄, 화성호에서 쉬고 있는 도요·물떼새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지구 남반구 넓고 안전한 갯벌에서 겨울을 따듯하게 난 도요새들은 봄이 되면 번식하기 위해 북상합니다. 겨우내 충분히 먹고 쉰 녀석들은 몸의 절반을 지방으로 채우죠. 심장을 제외한 모든 장기를 찌그러뜨리면서까지요. 몸이 너무 무거우면 잘 날지 못하고, 지방을 덜 채우면 중간에 지쳐 바다로 떨어져 죽게 됩니다. 시기를 맞추어 갈 준비를 마치면 서로 대화합니다.

끼끼끼기 끼끼끼기
(얘들아, 우리 갈까? 준비됐어? 날씨랑 바람이 좋아서 날아가기 딱 좋겠어!)

수십·수백·수천 마리의 무리가 함께 날아오릅니다. 번식지인 알래스카, 북쪽 끝 대자연을 향해 출발합니다. 2km 상공에서 평균 60km/h로 끊임없이 날갯짓하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한 태평양 한가운데 쉴 수 있는 땅은 없습니다. 아주 가끔 보이는 섬엔 내려앉지 못합니다. 갯벌이 없으면 먹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름 위를 날고 비바람과 번개를 지나 목숨을 건 비행을 합니다. 이동 중 절반 정도가 바다에 떨어져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된다고 합니다.

일주일을 날아왔습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않고 비행했습니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여겨질 때쯤 드디어 갯벌이 보입니다. 몸의 절반을 채웠던 지방은 연료로 모두 태워 뼈와 가죽, 가슴근육만 간신히 남았습니다. 갯벌입니다. 이제 살았습니다. 북반구 대자연 툰드라 지역으로 한 번에 가기엔 무리입니다. 하여 중간에 반드시 들러서 먹이와 쉼을 보충해야 하는데요. 그 휴게소가 바로 한국의 갯벌입니다. 더 넓게는 중국의 해안을 포함한 황해 갯벌이지요.

이들은 비행하면서 방향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해와 달과 별을 보고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시스템이 있다거나 하는 추론은 많습니다만, 과학자들도 결국 풀지 못한 수수께끼입니다. 몸에 지방을 축적하는 체계는 어떻게 터득했을까. 도요·물떼새 종마다 부리의 모양과 길이, 먹이가 다른 점도 신기합니다. 또 굳이 왜 이렇게 멀리 이동해야 하느냐? 아마도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 대자연을 찾다 보니 그랬던 거 같은데… 모르겠습니다. ‘우영우 변호사’가 다양한 고래 종을 떠올리며 감탄해 마지않듯 저도 도요·물떼새를 생각할 때면 “신비롭다! 하느님의 솜씨구나!”라고밖에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화성습지에서 큰뒷부리도요를 배웅하다

화성시 우정읍과 서신면에 걸쳐있는 매향리갯벌과 화성호, 화옹지구간척사업지를 통틀어 ‘화성습지’라고 합니다. 2018년 12월 국제기구 EAAFP(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로부터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임을 인정받아 142번째 철새이동경로 네트워크 서식지(Flyway Network Site·FNS)로 지정되면서 생긴 명칭입니다. 과거 남양만·화성호 등으로 불리던 곳으로 많은 도요·물떼새가 도래하는 서식지입니다.

북상하는 큰뒷부리도요
북상하는 큰뒷부리도요

매향리갯벌은 2021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람사르습지 지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화성호와 화옹지구 간척지 역시 습지보호지역 및 람사르습지 지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네스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화성습지를 인천·강화·아산 등과 함께 세계자연유산 ‘한국의 갯벌’ 2단계 등재에 포함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멸종위기 조류 서식지로서 생물다양성이 매우 높아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가 인정되므로 온 인류가 지켜야 할 자연유산이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지난해 봄 5월 12일이었습니다. 그날도 새와생명의터 대표인 나일 무어스 박사님(Dr. Nial Moores)과 화성습지에서 물새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전 저녁 6시경이었어요. 도요·물떼새들이 화성호에서 쉬고 있는 광경을 관찰하며 다시 한번 개체 수를 세고 있었는데요. 큰뒷부리도요 무리 중 일부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끼끼끼끼 끼끼끼끼 끼끼끼끼 끼끼끼끼

무어스 박사님이 조용히 알려주십니다. 저들은 곧 떠날 거다. 그동안 화성습지에서 잘 먹고 잘 쉬어서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했다. 날씨는 안정되었고, 바람의 방향도 좋다. 도요들은 보통 해 질 녘 이주 비행을 시작한다. 소란도 방해도 없기 때문이다. 지는 해를 보며 방향을 식별하기 좋고, 달과 별이 길을 안내해준다. 분명히 저들은 남쪽을 향했다가 선회하여 북쪽으로 날아갈 것이다.

박사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계속해서 서로 소통하던 큰뒷부리도요 한 무리가 날아오릅니다. 60-70마리쯤 될까? 그 모습이 여느 때와 다릅니다. 그들은 화성호 위를 빙글빙글 돌며 고도를 높여갑니다. 그러다 V자 대형을 갖춰 정남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크게 돌아 북쪽을 향합니다. 이내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저는 계속 지켜보고 싶어 쌍안경을 이용하지만 결국엔 보이지 않아요. Northward Migration! ‘북상’. 아마도 알래스카를 향한 이주 비행의 시작입니다.

먼저 가서 자기 짝을 기다리는 수컷,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곧이어 또 다른 떼가 날아오릅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 뒤 북을 향해 날아갔어요. 보다 큰 그룹이었어요. 200마리쯤 될까? 두 번 다 거의 전부가 수컷이었답니다. 첫 무리 때는 잘 못 보았고 두 번째는 불확실했는데 박사님이 설명해 주셨어요. 이어 또 한 무리가 날아올라 북상했고, 저녁 7시경에는 알락꼬리마도요 몇 그룹도 북상했습니다.

번식지에 수컷이 먼저 가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박사님 말씀에 따르면, 수컷이 먼저 가서 영역을 정리하고 둥지를 만들어 암컷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해요. 아무나 눈이 맞으면 짝짓기를 하는 걸까요? 아니요! 수컷은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날짜에 동일한 곳으로 가서 동일한 짝을 기다리고, 암컷 역시 정확히 같은 곳을 찾아가 자기 남편(?)을 만난다고 해요. 놀라운 타이밍! 경이로운 방향감각입니다.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섬의 킹펭귄 부모가 20만 마리 새끼 펭귄 가운데서 자기 새끼를 정확히 찾아내듯이, 새들도 자신들만의 언어와 소리를 통해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새들에겐 아마도 자신들 얼굴이 모두 달라 보이겠지요? 각자 이름도 있을까요? 올해 또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그이와 만나기 위해 수천 수만 킬로미터를 목숨 걸고 날아간 셈이잖아요. 서로를 정확히 찾아낸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의 음성을 알고 가려내는 세심함, 그리워하고 알아차리는 섬세함과 예민함이라니.

한 사람만 사랑하기로 약속하고 그만을 기다리는 모습은 얼마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지요. 서로를 아끼고 가족을 돌보는 믿음과 의리, 서로 소통하며 협력하여 위대한 비행을 해내는 저들의 지혜와 용기…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니 새와 자연의 숭고함에 절로 고개가 숙어집니다. 도요새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이 무겁기도 하지요. 보금자리를 만들어놓고 암컷을 기다리는 큰뒷부리도요 수컷을 상상합니다. 오래도록 기다리던 파트너를 끝내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암컷이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거나 매 같은 천적에게 잡혔거나 자연재해를 만날 수도 있을 텐데. 특히 걱정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매해 찾던 갯벌이 매립되어 사라졌거나 교란이 너무 커서 암컷이 충분히 먹지 못하고 비행하다 목숨을 잃었다면? 어디선가 인간에게 사냥당했다면? 만에 하나, 아니 자주 일어나곤 하는 ‘인간에 의한 고통과 슬픔’에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인간의 관점에서만 자연을 바라봤어요. 저 또한 나름 생태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제가 모른다는 이유로 엄연히 존재하는 저들의 속삭임과 소통, 사랑, 슬픔을 없는 걸로 여기며 살기도 했죠.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새들의 울음소리, 그들의 지저귐을 언어로 받아들이되, 상상과 추측만이 아닌 보고된 연구 자료와 오랜 경험에 기반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전문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은 훨씬 더 풍성해졌습니다. 다른 존재들의 삶을 조금 더 알게 되었으니까요.

붉은어깨도요와 큰뒷부리도요가 화성호 위를 나는 장면
붉은어깨도요와 큰뒷부리도요가 화성호 위를 나는 장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화성습지의 도요·물떼새들도 마저 북쪽으로 떠나겠죠. 여기서 번식하는 친구들은 빼고요. 여름엔 저어새와 백로류, 민물가마우지 등이 주로 화성습지를 지키고 갈대습지에선 개개비와 해오라기 등이 노래하겠죠. 여름이 채 가기 전에 다시 도요·물떼새들이 찾아오고 오리·기러기들도 화성습지를 찾을 것입니다. 북적북적하겠죠.

코헬렛(전도서)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결국 사랑하는 이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새들의 삶도 같지 않을까요. 사랑하며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목격하는 일은 매우 큰 행운입니다. 이러한 새를 포함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행복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행운아요 행복자입니다. 이런 행복을 더 많은 이들이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들이 언제 방문하더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서식지가 필요하겠죠. 화성습지가 그러한 곳이 되길 간절히 빕니다. 인간에게는 수산물과 쉼을 주는 좋은 일터요 휴식처로, 새와 뭇 존재들에겐 삶을 지속케 하는 무한한 생명의 공간으로 화성습지가 계속 거기 있기를 바랍니다. 습지는 보호가 필요합니다. 적실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다른 갯벌도 건강하게 잘 보전되길 바랍니다.

얘들아, 올가을 또는 내년 봄에 우리 꼭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

창조세계의 목소리, 하느님 마음

지난해 가졌던 마음을 다시 꺼내 글로 쓰고 나니 울컥합니다. 온 우주의 셀 수 없이 많은 존재가 제각각 내는 목소리를 들으실 뿐 아니라,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진 누구인지를 아시는 하느님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고 할까요. 자연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성경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놀라움과 신비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다 보니 힘들 때가 많습니다. 매일같이 “돈보다 생명”을 외쳐보지만 자본(돈)이 최고인 세상입니다. 장애인,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약자들의 외침은 묻히고, 흙과 돌멩이, 지렁이, 맹꽁이, 금개구리, 삵과 수달, 도요·물떼새, 상괭이 등 비인간 존재의 눈물과 신음도 결코 들리지 않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변하려 애쓰지만 이내 지칩니다. 힘겹습니다. 일요일만이라도, 아침 침상에서, 밥상 앞에서 잠시만이라도 정의·평화·생명의 하느님을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뜻을 품은 동지와 교우들의 기도와 따스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마침 지난 9월, 세계교회는 ‘창조절’을 맞이했습니다. 올해 창조절 주제는 ‘Listen to the Voice of Creation’(창조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입니다. 제가 속한 가온교회에서도 9월 4일 주일예배 때 ‘창조절 공동기도문’을 올리고 뉴질랜드 기도서 〈창조세계의 노래〉로 성시 교독을 대신했습니다(〈2022년 창조절 안내서〉, 세계교회 창조절 운영위원회). 노래가 꽤나 따듯하고 재밌습니다. 모르신다면 기독교환경운동연대 홈페이지에서 창조절 안내서를 꼭 다운받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생태적 회개와 실천을 요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크게 공감이 되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밥을 먹고 있는 저어새들. 위에는 쇠제비갈매기가, 왼쪽 아래에는 청다리도요가 있다. 학도요와 중대백로도 보인다.
밥을 먹고 있는 저어새들. 위에는 쇠제비갈매기가, 왼쪽 아래에는 청다리도요가 있다. 학도요와 중대백로도 보인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 아니라 흙의 먼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서로 기대어 사는 유기적 존재들입니다. 모두 탄소로 만들어졌고 탄소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먼지같이 흔하고 작은 나를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존중하시며 내 목소리를 아시고 귀 기울여 주신다는 사실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제가 믿는 하느님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시고 위하시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 자연을 이용 대상으로만 보는 인간의 탐욕과 교만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외된 이웃과 동료 피조물의 목소리를 듣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연(自然)은 한자를 풀면 ‘스스로 그러한 것’, 즉 ‘있는 그대로의 존재’입니다. 인간이 존엄하고 소중한 이유가 하느님이 만드셨기 때문이라면 비인간 존재, 심지어 생명 없다 여겨지는 존재들조차 하느님이 만드셨으므로 있는 그 자체로 무척 소중한 것입니다. 부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멋진 존재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창조의 하느님께서 이 땅과, 우리와 함께하길 빕니다.

정한철
스타벅스 닉네임 ‘청다리도요’. 도요·물떼새와 갯벌·습지를 통해 자연과의 사랑에 깊이 빠져버렸다. 〈뉴스앤조이〉 편집기자로 활동하며 기독 공익활동가의 길을 그리다가, 2015년 화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가온교회에 몸담기 시작하면서 정의·평화·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자연보호 운동, 특히 습지와 생물다양성 보전 운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사랑하는 이와 음식 나누기를 좋아하고 눈물이 많다. 에니어그램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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