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호 잠깐 독서]
사도 요한 연구 입문서
사도 요한의 복음서, 서신서, 계시록 본문을 꼼꼼히 살피고, 컬러 사진, 도표, 토론 주제를 수록했다. 저자는 요한문헌, 바울신학, 사해사본 등을 연구하는 신약학 교수이다. 9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쉽게 읽히도록 쓰이고 편집되어 ‘연구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신약성경에서 유일무이하게 그리스도의 강림이 실제로 전개될 과정을 묘사하는 본문이다. 하나님의 전사이신 예수는 다시 오셔서 자신과 신자들을 부당히 대했던 로마에게 되갚아 주실 것이다. … 흥미롭게도, 예수 재림 때 그분과 함께하는 메시아 군대는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우는 데 참여하지 않는다. 이 싸움은 그리스도가 혼자 해내신다. (747쪽)
딸을 잃은 아빠의 노래
일곱 살 딸아이를 잃은 아빠가 딸이 너무 그리워 쓰게 된 애도 일기. 일기를 쓰며 슬픔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은 몸이 찢기는 아픔이었으나 영혼의 순례로 이어졌다.
유나를 잃고 한참 동안 설명을 찾아 헤멨다. 이해하고 싶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소유한 지식과 경험으로는 현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누가 좀 설명을 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어떤 설명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신학자이건 아니건 상실이 주는 고통을 이 세상에서 다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다. 또한 그 설명이 꼭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회피하지 않고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노래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게 하는 힘은 설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서 나올 것이다. 내게 주신 고난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노래를 부르기로 한다. (124-125쪽)
젊은 지구 창조론자 × 진화적 창조론자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두 과학자가 나눈 진솔한 대화를 담았다. 두 사람은 상대방이 ‘교회에 심각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수년 동안 내밀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 첫 몇 장을 있는 그대로의 역사로 읽고, 하나님이 6일 만에 창조를 마치셨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진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쩌면 아메바가 원숭이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생각이다. 진화를 포함하여 많은 것들에 관한 과학적 정설을 오래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젊은 지구론을 믿는 것은 의사가 체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환자가 피를 흘리도록 내버려두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러한 분리 장벽 양편 모두에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 (‘서문’ 중에서)
마리아부터 황득순까지
격변과 광기의 시공간에서 주체적 신앙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살아낸 여성들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베다니의 마리아, 신비가 힐데가르트, 황득순 등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낸 여성들을 소환한다. 〈주간기독교〉에 연재된 글을 중심으로 묶었다.
여기서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을 의미하지만 은유일 수도 있다. 허리가 휠 정도로 노동했고, “나야 뭐” 하면서 늘 뒤로 물러났던 이름이다. 가장 오래, 가장 대규모로 보이지 않았던 이름이다. 어쩌면 나조차도 어느덧 제도 안에서 ‘갑’이 되고 ‘기득권자’가 되어 누군가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또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기 우리가 있다고. 땀 흘리고 때론 피 흘리며 생존을 위한 거친 날숨을 쉬고 있다고. 그들이 보이게 되고 들리게 되어야,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장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276-27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