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호 공간 & 공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카페는 집과 일터만큼이나 중요한 공간이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일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정리하고 일과 공부도 하는 복합공간이다. 커피도 좋아하고 공간에 관심도 많은 나로서는 카페만큼 가성비 높은 공간도 없다. 커피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블렌딩하는 곳이 많아서 다양한 커피를 경험할 수 있고, 또 공간디자인의 흐름과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영감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꽤 고가의 디자이너 의자를 갖춘 곳도 있고, 대중적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그림이나 예술품을 전시해놓은 카페도 있다. 큰돈을 들여 승부하지 않고 주인의 철학과 개성을 드러낸 작은 공간도 있고, 커다란 창을 내서 바깥 풍경을 실내로 끌어와 자연 속 쉼을 느끼게 해주는 곳, 오래된 주택의 멋을 살려낸 공간 등 저마다 다채로운 매력을 풍긴다.
내가 카페에서 얻는 좋은 인상과 감각은 화장실에서 완성된다. 외부에 있거나 남녀공용이기도 하고 다른 장소와 공유하기도 하는 화장실은, 카페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이다. 작은 꽃을 놓기도 하고 향이 좋은 핸드워시와 탈취제를 두기도 한다. 덜 해로운 공간이 되고 싶다는 어느 카페의 화장실에는 일회용 핸드타월이 아닌 직접 제작한 소창 수건이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다. 카페의 운영철학이 본체공간을 넘어 어디까지 표현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 바로 화장실이다.
어느 날, 지인과 카페에 들러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다가 화장실에 갔더니 오래된 작은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냥 음악이 아니라 라디오였다는 것. 버퍼링은 있지만 주파수는 없는 요즘 시대에,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오는 FM 전파 소리가 참 좋았다. 좋은 커피에 좋은 공간 그리고 안온한 화장실까지 이어지면 그야말로 만족스럽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카페여도 화장실 관리가 안 되면 좋았던 인상마저 망치곤 한다. 정리되지 않아 흘러넘치다 못해 바닥까지 버려진 휴지가 널브러져 있는 곳이라면 ‘재방문 의사 없음’으로 단호히 심판하곤 했다.
학교 다닐 때 쉬는 시간이면 ‘볼일’이 없어도 친구들과 우르르 함께 가던 화장실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화장실에 같이 가자는 ‘콜링’(calling)부터 가는 동안 복도를 지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episode)를 공유하기 위해 함께 가는 것이다. 화장실은 불안을 달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색한 자리거나, 긴장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는 특별한 ‘볼일’이 없는데도 화장실로 이동해 잠시 긴장을 내려놓기도 한다.
이렇듯 다-기능, 다-용도, 다-감성의 공간인 화장실이 사실 나는 무섭다. 덮개가 닫혀있는 변기를 마주했을 때, 볼일을 보려면 덮개를 열어야 하는데, 여러 사정으로 처리되지 못한 그 물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건 아닐까. 물에 불어 헤쳐진 휴지 뭉치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덮개를 열지 않고 먼저 물을 내리는 방법도 생각해봤으나 도리어 역공(?)을 당해 더 큰 위험을 떠안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썩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덮개가 닫힌 변기 칸을 넘어 다른 칸으로 이동해서 위험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곳을 이용하는 게 안전하다. 그러나 다른 칸으로 이동할 여유도 없이 급박한 상태로 화장실에 입장했을 때 덮개가 닫힌 변기를 만나면 외부 위험보다 내부 위험이 더 급하므로 과감하게 덮개를 열어젖힐 수밖에 없다.
화장실의 경고성 메시지도 한몫을 한다. “제발 변기에 휴지를 넣지 마세요. 수압이 약해 자주 막혀요ㅠ” 절절한 호소가 담긴 경고문을 보면, 휴지를 실수로라도 넣었다가는 정말 낭패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고에 따른다. 화장실마다 메시지가 다양해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여성 위생용품은 별도 수거함에 넣고, 물티슈 등 외부 쓰레기는 손 씻는 곳에 비치된 휴지통에 넣고, 휴지는 비치된 것만을 사용하고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넣되 또 너무 많이 넣지는 말라는 메시지. 머문 자리까지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꽤 꼼꼼하게 화장실 경고문을 읽어야 한다.
이런 긴장이 있는 화장실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다행이다. 장거리 여행을 갈 때 버스 대신 기차를 선택하는 이유다. 버스보다 기차가 비싸지만 버스에는 없고 기차에는 있는 그것, 화장실 때문에 기차를 선택한다. 지난해 친구와 완도, 청산도, 보길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남해의 수려한 풍경을 보려면 서울에서 완도행 버스를 타고 5시간 동안 이동해야 하는데, 그동안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물론 휴게소를 들리겠지만,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던가. 고속도로에서 잠시 내려달라고 기사님께 사정하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사정이 통하고 양해를 얻어 그 기회를 맞이한다 해도, 인간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주는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래서 화장실이 ‘있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더 큰 비용을 치르지 않기 위한 선택이 된다. 결국 친구와 나는 용산에서 나주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나주역에서 영산포 버스터미널까지 택시로 이동해서 1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버스로 2시간 30분 달려 완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기차에서 화장실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이 됐다.
더 큰 공포는 안전에 관한 것이다. 아무도 없어도 무섭고 누가 있어도 무섭다. 특히 칸막이가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막혀있지 않고, 위아래로 떨어져 옆 칸과 뚫려있는 곳에서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위 또는 아래에서 타인이 침범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며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인기척이 있는데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때. ‘왜 나가지 않는 거지?’ ‘내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습격하면 어쩌지?’ 그야말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또 여기저기 총 맞은 것처럼 뚫린 구멍들과 그 구멍을 임시로 휴지를 말아서 막아놓은 모습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해맑은 표정을 한 포순이가 “이곳은 불법 촬영으로부터 안전한 화장실입니다”라고 말해줘도 도무지 안심되지 않는다.
하루는 친구와 밤늦게까지 놀다가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하필 외부에 있는, 다른 업장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용 화장실이었다. 성별 무관 공용 화장실이지만 정문을 잠그고, 여성 전용 칸으로 들어와 후문도 잠근 채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데 외부 출입문이 철커덩하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그리고 열리는 문. ‘어? 잠갔는데?’ 그리고 남성 목소리가 여럿 들렸다. 지금 생각해도 정수리에서부터 땀이 난다. 정말 너무 공포스러워 ‘악’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외부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그 자리에 숨죽이고 있었다. 그들은 볼일을 마치고 나갔으나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가 너무 과민해서 그런 건 아닐까. 가끔 지인들에게 물어본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나처럼 불안한지. 그러면 절반은 공감하지 못했고, 그중에 일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화장실 공포감에 공감하는 사람이 절반 정도였다. 생리 활동을 하는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공포심을 경험한다는 것이 나만의 문제인지 정말 궁금하다. 만약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하게 일상적으로 공포심을 경험한다면, 개인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하는 사회로서도 손실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걸까. 익명성 뒤에 숨어 함부로 ‘공동’이 이용하는 공간을 내 집처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일부러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무방비 상태의 인간을 대상으로 동의 없이 촬영하고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인간이 인간을 해치면 안 된다는, 사회를 유지 시키는 기본적인 믿음이 흐릿해지는 공간이 화장실이다. 가장 사적이면서도 공유될 수밖에 없는, 불안을 해소해주면서 동시에 공포심을 주는 공간인 화장실이 언젠가 동료 시민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 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