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호 그림책으로 우리의 안부를]
살아 있다는 것 / 지금 살아있다는 것 /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 나뭇잎 사이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려보는 것 / 재채기하는 것 / 당신의 손을 잡는 것 // … 아름다운 모든 것을 만난다는 것 /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막아내는 것 // 살아 있다는 것 /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울 수 있다는 것 / 웃을 수 있다는 것 / 화낼 수 있다는 것 /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
생의 모든 순간에 대한 사랑의 온기를 노래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어느 한 장면만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 때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일들까지도 하나하나 아름다움으로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안희연 시인이 쓴 《단어의 집》이라는 산문집에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왜 ‘별 세는 밤’이 아닐까 생각하며 말한 인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세는 것’과 ‘헤는 것’의 차이가 수량을 센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셈이 따져 묻고 판단하는 일이라면 헤아림 속에는 가늠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헤다’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듯이 힘과 의지, 애씀이 수반되는 말이니 매사 헤아리며 살자고 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지나가는 세월의 날수를 세는 것을 넘어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날에, 심지어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이 순간들을 잘 헤아리며 슬기로운 마음을 얻기를 소망해봅니다.

지난 한 해의 특별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마스크를 쓰고 주먹을 맞대어 인사를 나누며, 제발 안전하길, 건강하길 기도하던 순간들이 어느 한순간의 점이 아니라 길고 긴 선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어떤 순간에 대한 기록이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순간을 붙잡아 간직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 그 기록을 읽거나 보는 자들에게는 그 순간에 대한 새로운 체험과 다짐을 줄 수 있기에, 우리가 맞이하는 순간들을 어떤 기록으로 남겨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백지 위에 손을 올려놓고 오래도록 머뭇머뭇하다가 자주 찾은 위안은 걷기, 계속 걷기, 그리고 읽기, 계속 읽기와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맞이한 올해,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안부를 묻는 가운데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가 또한 이 순간 살아갈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음을 발견하며 모든 순간의 의미를 헤아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