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호 커버스토리] 악인 전두환의 죽음을 보며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다가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고,
사망과 지옥도 그 속에 있는 죽은 사람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망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사망입니다.
(계 20:12-14, 새번역)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사망과 지옥마저 죽는다. 악한이 죽어 영벌에 처하는 게 아니라, 지옥과 함께 소멸해버린다. 나는 요한이 보았다는 사후 세계에 대한 환상을 해석할 재간이 없다. 또한 성서를 비롯해 고대와 중세에 다양하게 존재했던 천국과 지옥에 관한 신학을 서술하거나 비교할 식견도 없다. 다만 소망한다. 역사를 상하게 하는 악한들이 지옥으로 추락하길, 상한 역사 속 약하고 비겁한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천국에 닿게 되길, 소망한다.

이런 거창한 소망 이전에 평범한 일상이 있다. 병들고, 다치고, 늙어가는 평범한 일상은 늘 죽음과 닿아있다. 병들었을 때 회복되고, 다쳤을 때 치료되고, 늙어서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길 원하는 평범한 소망이 있다.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거창한 천국과 지옥 이전에 모든 사람이 병들고 다치고 늙어 경험하게 될 죽음이라는 의미의 ‘스올’이 나온다.

주님, 스올에서 이 몸을 끌어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시 30:3, 새번역)

스올은 죽은 몸을 매장하는 땅 아래 공간이다. 낯선 단어여서 무덤이나 구덩이보다 더 스펙터클한 상징일 성싶지만 그렇진 않다. 스올은 인생을 마친 이가 벌 받는 특별한 공간도 아니며 지옥만큼 깊거나 뜨거운 곳도 아니다. 마그마가 흐르는 깊숙한 곳에 매장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스올은 죽음의 은유다, 거기까지다. 시인은 스올에서 건져주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죽지 않고 살게 두신 것에 대한 감사를 노래에 담은 것이다.

죽음을 죽음이라 표현하는 게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스올이라 하지만, 결국 살아있는 사람은 스올에 죽음 이상의 의미를 담지 못한다. 살아서 건강하게 오래 살면 아직 스올에 가는 게 아니어서,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하나님의 통치와 보호를 받는 천국에 닿은 것이나 진배없으므로. 그런데,

전두환이 오래 살다가 죽었다. 게임하듯 시민들을 사냥했던 전두환이 90년을 살다가 죽었다니 화난다. 사죄도 하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고 죽은 전두환에게 화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장례가 끝났는데 장지를 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화난 사람들이 전두환의 무덤을 파 그 시신을 훼손할까 염려하는 것일 게다. 옛날 송덕비에 돌을 던지던 일에서 비석치기가 유래했다는데, 그 비석에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전두환의 가족은 잘 아는 게다. 죽은 전두환이 스올, 즉 무덤에 아직 가지 못했다면 스올은 분명 악한의 거처는 아니겠다. 악한(惡漢) 전두환은 스올에 갈 자격이 없는 것이다. 평범한 죄인들이 묻히는 스올을 지옥이라 오해하지 말자. 전두환이 죽어서 가야 할 곳은 스올이 아니라 지옥이다. 전두환의 유해가 장례 후에도 그의 집에 있다면, 전두환의 집이야말로 지옥이다. 전두환의 집이 지옥이길, 나는 소망한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지옥의 지형도〉(La Carte de l'Enfer, 1495)<br>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지옥의 지형도〉(La Carte de l'Enfer, 1495)

나는 천국과 지옥을 소망한다. 죽음 후에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때가 있어 죄인(罪人)들과 악한(惡漢)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시간, 죄인들은 용서받고 영생에 이르며 악한들은 벌을 받고 소멸한다는 바울과 요한의 편지를 진지하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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