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호 시사 꼬리잡기]

“여러분은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감이 있으십니까?”

6월 3일 ‘2021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당시 이준석 당대표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언급하며 던진 질문이다. 이 연설은 진영·지역·세대를 막론하고 호평을 받았고, 나와 동갑내기인 1985년생 이준석은 제1야당 대표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극우’ ‘수구’라고 비판하는 정당조차 공존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송강호와 공존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멀리하고 싶은 송강호 박사

배우 송강호가 아니라 제주교도소에서 1년 넘게 수감 중인 사단법인 ‘개척자들’ 송강호 박사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 아체, 동티모르, 아이티 등 분쟁 및 재난 지역에서 벌인 평화 활동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던 그 개척자들이고, 강정 해군기지 반대 활동에 힘을 쏟기 시작하며 교계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기지 완공 후에는 시민사회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진 그 송강호 전도사다.

지난 시절 아내와 함께 여러 번 개척자들을 방문했고, 난민 캠프 인근에서 송강호 박사와 몇 주간 한 모기장을 같이 쓴 경험도 있다. 열악하거나 때로는 적대적인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고 희망을 전하는 멋진 모습에 감탄하기도 하고, 듣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 못난 태도로 동료에게 거듭 상처를 입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역시 성인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도, 누구보다 기도에 진심이며 ‘브라더 송’(Brother So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를 좋아하는 이 사람에게서 받은,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 뜻을 따르려 애쓴다는 느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런 그를 응당 가까이해야 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멀리하고 싶다. 공존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인데 그에게 곁을 내주고 싶지 않은 것을 보면, 좋아하고 존중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송강호 박사와 ‘공존’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듯하다.

그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강정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껄끄럽기 때문일 수 있다.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쉽게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다. 완공된 지 이미 5년도 더 지난 군사시설을 반대하는 일이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야기한 평화가 국가나 세계 체제 단위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 없는 평화활동가들

그런데도 나는 개척자들이 사역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분쟁 현장에서 일하는 단체들은 전문가로서 거리를 두고 피해자들의 물질적 필요를 효과적으로 채우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개척자들 소속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수개월, 혹은 수년간 비참한 환경을 똑같이 겪어내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웃이자 친구가 된다. 그 신뢰와 연대감의 바탕에서 희망과 평화의 씨앗이 스스로 싹트기를 기다린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으나, 영혼을 돌보는 후자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브라더 송이 시리아나 예멘 같은 곳에 가서 난민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을 재개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도울 텐데….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도울 텐데’라고 적으며 강정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에 함께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예전에는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이 활동이 ‘최선이 아니므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같은 말을 ‘하나님 뜻이 아니니까’라고 덜 세련되게 표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히 누가 하나님 뜻을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이 언뜻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딱 봐도 계산이 나오는 일이었다면 ‘밭에 숨겨진 보화’ 비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나는 이 평화활동가들을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다. 잊을 만하면 이들도 한 번씩 내 삶에 끼어든다. 지인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개척자들 소식이 들리기도 하고, 내가 몸담은 출판사에서 송강호 박사의 신간이 나오기도 한다.1) 뼈 때리는 제목과 하드코어한 표지가 잘 어울리는 이 책의 저자는 ‘물귀신’이라는 강정에서의 별명에 걸맞게 끊임없이 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불편하게 한다.

아주 작아 보이지만 실은 매우 크고 중요한 일

3년 전 방글라데시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해 질 녘 논두렁에 앉아 브라더 송과 두런두런 대화 나누던 때가 생각난다. 그날도 어김없이 생긴 지 20년이 넘은 로힝야 난민 캠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인사하고, 말 상대를 해줄 것 같은 사람들을 붙잡고 손짓과 발짓을 해가며 이야기 나누고, 몰려드는 아이들과 공터에서 놀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TV 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이랑 똑같은 콘셉트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방송 초창기 조세호 씨처럼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딘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나만의 유재석’은 꿈꾸는 청년들을 찾고 싶다고 했다. 난민촌에서 태어나 평생 배급과 통제만 받아온 사람이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으며, 있다 한들 끝도 보이지 않는 텐트의 바닷속에서 어떻게 만날 것이며, 만난다 한들 친지들이 지금 이 시각 국경 너머에서 계속 총칼에 죽어나가는 와중에 폭력을 쓰지 않고 평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무슨 설득력이 있을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는 총을 든 방글라데시 군인 아저씨의 불심검문으로 끝이 났다. 며칠 후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소개를 받아 청년 몇 명을 몰래 만났는데, 그들 중 일부는 집안에 남자가 없어 배급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들을 돕는 일을 스스로 시작했다. 그 친구들이 지금도 구호 활동을 하고 이제는 아이들도 가르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것참,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보잘것없던 하루하루가 내 생각보다는 더 의미 있었다는 깨달음과 함께.

브라더 송은 지금도 현실적이지 않지만 ‘진짜’인 일, 아주 작아 보이지만 실은 매우 크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 끝났다고 모두가 떠나버린 자리에 남겨진 이들과 여전히 함께 울며, 절망 속 아름다움을 고집스럽게 노래하는 한 줌의 사람들…. 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골고다와 무덤가를 지키던 세 여인의 마음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 여인들도 신변에 위협을 받았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들 덕분에 예수 부활이라는 기적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송강호는 지금도 외치고 있다

“혼자로서는 죄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고 우리 시대의 거센 도전 앞에 응답할 만한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에… 내 곁에서 하나님의 현현이 되어주는 선배님들과 공동체의 식구들이 너무나 고맙다”(《그리스도인 직무유기》, 76쪽)라고 고백하는 송강호는 지금 너무 외롭다. 대법원은 6월 30일 피고 송강호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고, 남아있는 소수 활동가는 ‘강정 평화센터 폐쇄’와 ‘코로나’라는 어려움을 통과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개척자들의 집이었던 양평 샘터공동체는 지금 텅 비어 있다.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처럼 보이는 개척자들의 멤버들도 우리처럼 연약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만 그들은 평화를 위해 함께 살며 서로를 가장 작은 자, 즉 예수처럼 대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지금은 각자 떨어져 있기에 신음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시간을 내어 제주에 다녀왔다. 2년 전 두 손주의 할아버지가 된 왜소한 체구의 남자는, 면회실 칸막이 너머에서 몇 년 만에 만난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가 창살 안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우습거나 가볍지 않다. 예언자들이 노래하고 예수님이 시작하신 전쟁 없는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실천해온 사람들은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모두 “평화로운 세상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로 만들어야 할 책임을 떠맡은 사람들”이라고 송강호는 외치고 있다.

형제자매로 지내기 위해, 또 누군가의 이웃이 되어주기 위해 서로 꼭 좋아하거나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아주 조금이라도 내 아픔으로 느끼는 것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해군기지 소유가 되어버린 구럼비에서 기도하고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오다 붙잡혀 교도소에 갇힌 송강호 형제의 처지가 딱하다면 편지 한 통, 기도 한 토막이라도 보내주자.2) 그의 여정이나 표현에 다 공감하지는 못할지라도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세상”(미 4:3)을 향해 나아가려는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책3) 한 권쯤은 주문해놓자. 광야에서 한 예언자가 외치는 소리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귀에 가닿을 수 있도록. 힘든 시기를 지나가는 개척자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위로가 되도록. 서로의 존재를 지켜주려는 그런 작은 몸짓도 없다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 각주

1) 도서출판 대장간에서 출간한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를 한 권이라도 더 팔고자 하는 동기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2) 편지, 면회, 영치금 안내는 개척자들 홈페이지(wcfgw.nayana.kr)를 참고하기 바란다.

3) 송강호 박사가 개척자들과 함께해온 여정은 인터뷰에 기반한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IVP, 2012년)에 서, 강정에서 꿈꾸는 평화의 모습은 박정경수 형제와 주고받은 옥중 서신에 기반한 《강정평화서신》(짓다, 2018년) 에서, 공동체와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는 신앙고백과 메시지는 개척자들 잡지에 기고한 글에 기반한 《그리스도인의 직무유기》(대장간, 2021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코
논산 시골 마을에 산다. 좋은 이웃, 진짜 형제가 되고 싶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다. 도서출판 대장간에서 일하며, 《초기 기독교의 예배와 복음전도·선교의 변질》 《지금이 영원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공역했다. joenlain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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