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호 커버스토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진우·무지개신학교 서총명
‘안전한 공간을 조성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유진우 씨와 무지개신학교 기획단원 서총명 씨를 만나고 나서 들었던 질문이다. 진우 씨는 4월 23일 열린 ‘자퇴는 했지만 목사는 되고 싶어’ 포럼에서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장애인 차별 피해 당사자로 선 바 있다. 함께 만난 무지개신학교 기획단원 총명 씨는 진우 씨에게 포럼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다. 무지개신학교는 교단 소속 신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강좌(페미니즘·퀴어·장애·생태 등)와 활동을 하는 단체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부당 징계 피해 학생 총명 씨와 친구들이 모여 함께 세웠다. 현재 총명 씨는 3년째 휴학 중이다. 본지는 6월 3일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이들을 만났다.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포럼의 기획 과정과 근황 등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장애 인권과 관련한 탈시설·이동권·노동권 이야기도 정리했다.
공기처럼 존재하는 차별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은 그의 저서 《장애학의 도전》(오월의봄)에서 장애학을 이렇게 소개했다. 몸에 있는 손상 때문이 아니라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관계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진우 씨는 학교를 다니면서 이를 ‘공기’처럼 느꼈다.
중증 뇌병변장애인으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진우 씨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 교단 신학교인 한신대 신대원에 진학했지만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자퇴를 결정했다. 졸업 필수과목 ‘목회실습’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결정적 계기였다. 진우 씨는 장애를 밝히고 스무 군데 교회에 전도사로 지원했으나 면접도 보지 못했다. 그를 서류에서 탈락시킨 교회들은 교회 건물 내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화장실에 턱이 있거나, 교회 축구부를 지도할 수 없을 것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아예 이유를 고지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학교는 사역지가 정해질 때까지 여러 교회를 순방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방침을 내렸다. 진우 씨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목사고시 자체를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2년 동안 교회 전도사로 근무해야 목사고시를 칠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학내에서 마주한 다른 차별적 경험도 누적된 상태였다. 앞으로 목사가 될 학생들이 교제하는 공간인 신대원 기숙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또 학교의 모든 출입문은 이중문이었다. 첫 번째 문은 카드를 찍고 수동으로 여닫는 형태였고, 두 번째 문은 제 힘으로 열거나 발로 차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는 출입하기 어려웠다. 입학 후 두 달이 지나 진우 씨는 목회실습 등 학교 전반적인 수업을 관리하는 교역지도실을 찾아가 어려움을 호소했다. 돌아온 대답은 “기다려라, 기도하겠다”였다.
진우 씨는 1년여를 기다렸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자 절차를 밟았는데, 1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였다. 학교에 더 이상 남아있다가는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2월 자퇴서를 제출했다. 자퇴서 수리 과정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둘이서 학내 장애인차별철폐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소극적이었다. 진우 씨는 이 순간을 가장 힘든 기억으로 꼽았다. 자퇴 후 언론을 통해 사안을 공론화하자 학교는 그제야 그의 복귀를 설득했다. 진우 씨의 사역지를 구했고, 노회 장학금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한 학기를 남겨둔 상태라 고민했지만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진우 씨는 장애인 한 사람만을 위한 일회성 도움이 아닌 장애인 차별을 없애거나 완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학교 측에 전달했다.
두 사람이 포럼을 준비하기까지
진우 씨와 총명 씨는 2020년 무지개신학교 수업 시간에 처음 만났다. 총명 씨는 무지개신학교 커리큘럼을 짤 때 장애인이 신청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진우 님이 처음 온 날이 지하 1층에서 열리는 강연 날이었어요. 그때 진우 님을 부축해 내려왔죠.” 그 주에 바로 기획단원 회의가 열렸다. 처음에 총명 씨는 지난번처럼 지하 1층에서 그대로 열되 진우 씨를 도우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진우 님이 땀 뻘뻘 흘리면서 내려오는 그날 모습이 생각나는 거예요. ‘왜 이 사람이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싶더라고요. 모든 수업 장소를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바꿨죠.” 그때부터 다른 기획단 친구와 함께 진우 씨가 타고 오는 장애인콜택시를 기다렸다.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걸리더라고요. 매주 반복해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겠고 여기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진우 씨는 무지개신학교와 함께하게 됐다. 처음부터 진우 씨 이야기를 주제로 포럼을 열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기획단원들은 각 교단별 헌법 규정을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9월 총회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같이할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장애 인권은 교계나 교단에서 큰 이슈가 아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총명 씨는 자신이 당사자로 섰던 ‘쫓겨난 사람들’ 포럼을 떠올렸다. “진우 님도 여기서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왜 신학을 하려고 했고 왜 그만두려고 했는지 정리하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퇴든 어떤 선택이든 축하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일이니까요.”
포럼을 준비하면서 처음 시도하는 게 많았다. 먼저 장애 없는 장소와 현장중계를 위한 기술이 필요했다. 도움을 준 곳은 청어람ARMC(이하 ‘청어람’)였다. 강연자가 오르는 무대를 뒤로 빼줬다. 무지개신학교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에 연락해 문자통역사와 수어통역사를 섭외했다. 그래도 놓치는 게 있었다. “저희가 답사 갔을 때 건물 2층에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걸 확인했거든요. 그런데 오후 7시 반부터는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하더라고요. 장애 차별 포럼을 하면서 그런 걸 놓쳤다는 게 아쉬웠죠.”
간담회 자금도 예상보다 많이 모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 50만 원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진우 님이 ‘저 이번에 첫 월급 타요. 제가 낼게요’ 하는 거예요. 자기 이야기로 간담회를 하는데, 후원금이 안 들어오는 상황에서 미안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무지개신학교 안에서 잘 해결하긴 했죠.”
총명 씨는 청어람 외에도 다른 연대 단체들이 있다면 포럼 기획이나 준비를 더 탄탄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뜻 함께하자고 제안하기가 망설여졌다. “섭외한 강의가 취소된 적도 있고, 무지개신학교랑 함께하면 동성애 옹호 단체로 엮여서 공격받는 경우도 몇 번 있어서 같이하자고 하기가 죄송해서요.” 최근 한 교계 매체로부터 공격을 받은 청어람이 그 예시다. 이런 공격은 총명 씨 본인이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장신대 신대원 징계 무효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총명 씨의 일상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날’ 이전의 학교와 이후의 학교가 달랐다. “환대받지 못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과연 숨을 쉬며 다닐 수 있을까 싶어서요.” 복학은 이사회를 거쳐 마지막 날 승인이 났고 반성문과 같은 입장문을 요구받았으나 제출하지는 않았다. 학교는 학생을 더 쉽게 징계할 수 있도록 경건교육처 규정을 개정했다. 함께했던 다른 친구는 목사고시에 합격했지만 최종 불합격 처리가 되었다. 총명 씨는 휴학을 선택하고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중에 있다.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9월 교단 총회를 위한 준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는 지난 1월 진우 씨와 접촉해 소통하면서 기장 교단이 바꿔야 할 의제들을 정리했다. 내부 회의를 거친 후 장추련은 3월부터 교단 산하 교회와사회위원회 및 인사행정목회지원부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면담은 계속 미뤄졌다. 자퇴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인 5월 12일에야 진우 씨는 기장 측과 만날 수 있었다.
진우 씨와 장추련이 정리해 제출한 의제는 크게 세 가지다. ‘장애인 차별 금지 조항 명문화 및 목사 안수 전체 과정에서의 장애인 편의지원 가이드 마련’ ‘장애인식개선 교육’ ‘한신대 대학원 편의시설 개선’. 기장 측은 내부에서 이 사안을 충분히 논의하여 9월 총회 때 헌의안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헌의안이 올라간 후 총대 과반이 동의해야 통과된다.
기장 헌법 정치 제4장 목사 제20조 목사의 자격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목사는 신앙이 진실하고 교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신체가 건강하고 행위가 복음 선교에 적합하며 가정을 잘 다스리고 타인의 존경을 받으며(딤전 3:1-7)”. 진우 씨와 총명 씨는 다른 교단에도 차별적 규정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 “교단별로 만든 장애인주일 자료집도 살펴봤거든요. 장애인들이 교회에 왔을 경우 어떤 것이 필요한지 이미 논의들이 충분히 있어요. 그럼에도 교계 안에서 잘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진우 씨는 이에 대해 “장애인은 일반 신자로서 차별받지는 말아야 하지만 목사는 안 된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 목회자도 있지만 교단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 교회를 개척한 케이스예요. 은폐된 차별도 있어요. 몇몇 대형 교회 사랑방은 지적발달장애인을 한곳에 모아놓고 예배하는 공간이죠. 그분들은 자발적으로 교회에 왔고 다 생각이 있는데, 예배 분위기를 흐린다는 명목으로 분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신학을 다루는 국내 서적들도 찾아봤지만 많지 않았다. “신학 논문들은 주로 장애를 시혜적으로 바라보고, 외국 서적들은 번역이 안 되어있고요.” 총명 씨는 장애운동판(장판)의 언어를 교회에 ‘번역’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언어를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오면 발표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양쪽 언어를 잘 아는 사람이 번역해줘야 교계도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총명 씨는 진우 씨에게 다가오는 여름 무지개신학교에서 장애학 관련 강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진우 님이 당사자로서 신학적 언어를 잘 구사하면서도 장판 활동가니까, 두 영역이 함께 갈 수 있으면 힘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피해자로만 남고 싶지 않았다
진우 씨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노들’) 사무국 제안으로 4월부터 소속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입사 후 진우 씨는 노들이 현장 최전선에서 싸우는 단체라는 걸 느꼈다. 이동권 투쟁으로 버스 아래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휠체어 앞에 철판을 달고 경찰벽을 부수는 활동가도 있었다. 생각보다 운동이 과격했다. 그만둬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계속해보기로 했다. “저는 진보운동이 현장과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은 누가 못하나요. 본인이 해야죠. 노들에는 장애 인권을 연구하는 노들장애학궁리소가 함께 있어요. 이론이 바탕이 되어 현장에 나가면 힘이 있다는 걸 짧지만 많이 느꼈어요.”
진우 씨의 주된 업무는 동료 상담이다.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자립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욕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개별 지원을 하는 활동이다. “만약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같이 여행 가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같이 쇼핑도 하면서 그분이 직접 구매하도록 하는 활동이에요.” 진우 씨는 장애 인권을 위한 각종 기자회견 및 투쟁 현장에도 나간다.
특별히 진우 씨가 관심 있는 현장은 세종시다. 세종시에서는 민간 업체가 장애인콜택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법정 의무 대수보다 적은 차량을 예약제로 운영했고, 그마저도 오후 6시 이후에는 이용할 수 없었다. 운전기사의 이용객 폭행 및 비리 등의 문제가 반복됐다. 세종시는 올해부터 콜택시를 공공 업체에서 운영할 것이라 약속했지만, 고용승계 문제가 터졌다. 300여 일 투쟁 끝에 강태훈 누리콜 노조 지회장의 단식농성 15일째가 돼서야 세종시는 기존 운전원 모두에게 응시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진우 씨는 저상버스의 낮은 보급률도 지적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희국 의원(국민의힘)이 받은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 28.4%, 서울 56.4%였다. ‘제3차 서울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 2022년 목표로 밝힌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은 65%. 그러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저상버스 도입은 무기한으로 미뤄지고 있다.
저상버스를 이용할 때도 차별은 존재한다. “늦는다고 승객들이 기사 아저씨한테 뭐라고 한 적도 있어요. 버스 경사판이 고장 나서 못 타기도 했고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개별적 이동수단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저상버스 이용 거부 관련 경험’에 응답한 장애인 이용자 229명 중 110명(48.0%)이 저상버스 이용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 ‘저상버스 이용 거부 이유’(복수 응답 가능)로는 ‘버스 경사판 작동법을 기사가 모르거나 작동 불량으로’(응답자 중 69.1%, 76건)가 가장 많았고, 이어서 ‘기사가 다음 버스를 타는 것을 권유해서’(응답자 중 39.1%, 43건), ‘승객이 많거나 만차여서’(응답자 중 38.2%, 42건), ‘무정차 통과 또는 버스에 접근하기 전에 버스가 출발해서’(응답자 중 34.5%, 38건), ‘버스 정류장의 접근권이 어려워서(예: 턱의 높낮이 차이)’(응답자 중 32.7%, 36건) 등이었다. 진우 씨는 정류장 안내 방송 데시벨 크기, 경사판이 내려올 때 정류장 턱과의 간격이 어떤지 확인하고 건의하는 ‘버스 타기’ 운동을 하고 있다. 차별 버스(계단 버스) 밑에 들어가 운행을 막고 선전물을 붙이기도 한다.
함께 가는 탈시설·이동권·노동권 운동
진우 씨가 이동권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 인권을 위한 양대 법안은 크게 두 가지다. ‘탈시설’, 그리고 이동권과 노동권을 포괄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 시혜나 동정, 복지 차원이 아닌 국민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진우 씨는 양대 법안이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자유롭게 노동하고 움직일 수 없으면 다시 분리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중 ‘탈시설’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2월 청도대남병원 수용자 집단감염 및 인권침해 사태로 필요성이 촉구됐으며,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로 공약한 바 있는 탈시설법 제정은 왜 늦어지고 있을까. 6월 1일 여의도 이룸센터 앞 탈시설 농성 현장에서 만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행동’) 활동가 정민구 씨는 그 이유로 “기존 시설 협회의 입김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중앙정부 지원 정책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바닥행동은 처음에 좋은 시설 만들기 운동을 펼쳤으나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미신고 복지시설을 민관합동으로 전수조사한 이후 탈시설을 중심 의제로 전향한 단체다. “탈시설은 공간의 이동이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는 곳이 바뀌면 사람이 변해요. (이전보다) 더 다양한 단어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은 놀라죠.”
민구 씨는 이어서 탈시설 운동이 장애인만의 인권운동이 아닌 모든 인권의 운동이라고 짚었다. 탈시설 운동은 형제복지원 등 강제노동수용소에 잡혀간 노숙자·장애인·부랑아·무연고자 등 ‘부랑인’ 인권침해 역사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이 비극은 아시안게임·올림픽 등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이 내린 ‘부랑아’ 정화 지시로 생겨났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정권 시기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짧은 역사를 〈프레시안〉에 기고한 바 있다.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집, 활동지원사, 그리고 직업이 필요해요. 특히 노동권과 관련해서는 장애인에게 최저시급제가 적용되지 않고 장애인 고용의무제도 또한 유명무실한 상황이에요.” 고용노동부가 2019년 조사한 ‘대기업 집단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 및 ‘장애인 의무고용 미이행 민간기업 고용부담금 자료’를 살펴보면 국내 대기업 75%가 민간부문 장애인 의무고용률인 3.1%를 지키지 않고 있다(삼성전자는 2019년 기준 5년 연속 이를 지키지 않아 가장 많은 부담금 약 616억 원을 냈다). 이에 민구 씨는 장애인 노동권을 위해 권리 중심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이 필요한 모델이라고 짚으며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시범사업인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은 ‘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 세 가지 분야에서 무형의 가치를 생산하는 맞춤형 일자리를 장애인에게 제공한다. 진우 씨도 이를 한 구호로 설명했다. ‘이것도 노동이다.’ 진우 씨는 올해 8월 무지개신학교에서 노동권·탈시설·이동권 등을 토대로 장애학 강의를 진행한다.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무지개신학교는 진우 씨와 함께하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배워나가고 있다. 1월에는 기획단 워크숍으로 진우 씨가 자퇴 후 지냈던 그의 고향 군산에 갔고, 8월에는 함께 원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계획하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장애인 밴을 빌려서 운전해서 갔는데, 원주 구룡사에 장애 없는 산책길이 있더라고요. 밥 먹을 때는 식당 이미지를 무조건 확인해서 입구에 턱이 있나 없나 확인했어요. 저희 기획단 안에 비건도 있거든요. 이게 전혀 수고스럽지 않고 충분히 재밌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총명 씨는 이를 ‘다채로움’이라고 표현했다. “기획단이 오픈 카톡방에 모여 있는데 활동을 쉬고 싶을 때는 자유롭게 쉬기도 해요. 이 안에서 소모되지 않고 바깥에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요. 무지개신학교가 추구하는 가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총명 씨는 조직이나 체계가 있는 길에서 이탈하면서 스스로의 신념이나 방향성을 붙들 수밖에 없었다. 가끔 그 신념이 흔들릴 때도 있다. 관계도 많이 끊겼다. 그런 총명 씨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무지개신학교처럼 한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함께하는 사람들과 안정감을 공유한다고 느껴질 때라고 했다.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아갈 수 있구나 싶어요. 내가 안전한 공간을 직접 만들어내는 효능감도 생겼고요.”
세계가 넓어진 건 총명 씨만이 아니었다. 진우 씨 또한 무지개신학교 기획단원이 되며 신학교를 벗어났지만 신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진우 씨는 노들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어려움도 있지만, 장판 운동을 하며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인식하게 되었고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 인터뷰 말미, 진우 씨는 한쪽 팔을 내밀었다.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Cherish r7’. “cherish는 ‘소중히 여기다’, r7은 ‘무지개’를 뜻해요. ‘이 운동을 왜 하고 있지?’ 싶을 때마다 떠올리려고 새겼어요. 제가 자퇴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지지를 받았거든요. 장애인·퀴어·여성·빈민·동물 등 차별당하는 다른 현장의 존재들이 연결돼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생명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투쟁하는, 초심을 잃지 않는 활동가가 되고 싶어요.”
‘자퇴는 했지만 목사는 되고 싶어’ 포럼은 사회를 본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연대 대표의 맺음말로 끝이 났다. “오늘은 유진우지만, 내일은 또 다른 유진우가 앞에 나와 얘기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교회 안에서 차별을 얘기하는 또 다른 유진우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