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호 그들이 사는 세상] 중국선교 이후 ‘새 힘’을 얻은 20대 전이슬 씨

   
▲ ⓒ복음과상황 오지은

이번에 만난 ‘그들’ 중 한 분은 전이슬(25) 독자입니다. 지난해 중국선교를 다녀오셨는데요. ‘어려운 시기였지만 매달 도착한 복상이 힘이 되었다’는 독자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오히려 그 편지에 복상이 더 큰 힘을 얻었지요. 바쁜 일상 중 짬을 내 편지를 보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기에 더 큰 감동이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어 무작정 약속을 잡아 이슬 님이 살고 있는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처음 보는 기자들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셨는데요. 케이크 값도 싸고 고급 차가 리필되는 카페를 소개해주신 덕에, 인터뷰 분위기는 최고였습니다.

― 지난해 중국에 다녀오셨는데요.  
2014년에 선교단체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통해서 통일을 준비하자는 취지의 캠프가 열렸어요. 거기에 참여했다가 관심이 생겼죠. 자연스레 통일 NGO 단체 간사님과 연결되어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조선족 마을에서 그분들과 직접 살면서 피부로 만나는 기회를 얻게 된 거예요. 저는 원래 틀에 박힌 것 좋아하고 안정적인 걸 추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중국에 가게 된 건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어요.

― 가서 무슨 일을 했나요?
‘생존’이 과제였어요.(웃음) 중국에 함께 오셨던 관계자분들은 현지에서 핸드폰 개통이나 학교, 유치원 등에 연계만 해주고 바로 돌아가시거든요. 혼자 남는 거죠. 한 학기 동안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조선족 아이들이 모이는 유치원 교사와 교회에서 반주 등을 했어요.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유치원 교사, 아이들 많이 보고 싶겠네요.
아…, 저는 어린아이들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성악설을 인정하게 되었어요.(웃음) 제가 언어가 안 통하니까 음악과 미술을 가르쳤는데, 며칠 지나니까 제가 자기네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걸 알고 놀리고 그러더라고요. 교회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보고 싶어요. 소통이 가능했거든요.

―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고. 외롭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하지 않던 몸 쓰는 일도 하고, 하루 일정이 정신없이 바쁘게 흘러가기 때문에 처음엔 지쳐서 잠들었어요. 눈치로 모든 일을 알아서 해야 하니까 종일 신경이 곤두섰다가 일정이 끝나면 ‘힘들다’ ‘외롭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절해서 자는 거죠. 한두 달 지나고 나서야 밤에 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음식도 몸에 맞지 않아서 과자를 사서 먹었어요. 돈이 없으니까 비스킷 사서  3개는 오늘, 남은 3개는 내일 먹고 이런 식으로요.

― 가족들 보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 전화하고 싶어도 핸드폰 요금이 없어서 못했어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죠.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 보고 싶었던 적 없었는데 너무 힘드니까 보고 싶더라고요.

― 중국에 간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대학 졸업하고 취업준비는 안 하고 중국에 선교를 간다는 게 일반적인 코스는 아닐 텐데.
물론 반대했죠. 엄마는 걱정하셨고, 아빠는 ‘나이가 들면 뭐하냐 취직하고 돈을 벌어야지’ 하셨는데 귓등으로도 안 들었어요.(웃음) 티케팅을 해버렸죠. 그렇다고 아주 막 나간 건 아니에요. 부모님 마음도 풀어드릴 겸 대학 졸업하면서 졸업장을 똑같이 부모님 이름 써서 만들어 드렸어요. 돈과 함께! 아빠 광대가 승천한 틈을 타 중국에 가는 것을 완전히 허락받을 수 있었어요. 엄마는 어느 순간 교회에서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셨대요. ‘그래, 내 자식이 아니구나. 하나님 자녀이구나.’ 뭐 이런 식의?

― 본인 스스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어요? 뒤처질 거라는 불안함과도 싸워야 했을 텐데….
솔직한 심정은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고 가자’였어요.(웃음) 진로에 있어서 텀을 두는 의미도 있었고요. 그래도 고민이 있었죠. 이게 뭐 버리는 시간은 아니지만,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또 아니니까. 연애의 역사는 시작도 못하겠다는 불안감도 있었어요. ‘선교 다녀온 여자’에 대한 선입관이 작용해서 이대로 연애를 못하는 건 아닐까? 고민 많았지만 다 포기하고 놓는 마음으로 다녀왔어요. 사실 중국 가기 전까지 3~4년 동안 신앙을 버릴까 고민할 정도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있었거든요. 이번에 가족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오히려 나와 가족과의 관계를 깊이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제 피해의식의 근원을 파헤치게 되었어요. 귀중한 시간이었죠.

― 원래 선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아니요. 원래 ‘선교’라고 하면 콧방귀 끼고 비아냥거렸어요. 그러다가 아까 말한 통일 준비 캠프에 다녀온 이후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죠.

   

좌: 아이들이 낮잠자는 곳을 정리한 후 찍은 사진. 한창 적응이 안되고 있을 때 이곳에서 조용히 이불을 개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우: 제게 성악설을 알게해준 아이들. 지금 보니 너무 사랑스럽네요! (사진: 전이슬 제공)

― 중국에 다녀온 이후와 이전의 통일관이 많이 바뀌었겠어요.
더 손에 잡히는 느낌? 항상 정책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접하다가 삶으로 접하고 온 느낌이에요. 유치원 아이 중에는 탈북민의 자녀도 있고, 제가 있던 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북한 신의주였거든요. 다른 선생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으로 식사하러 가는데, 저는 갈 수가 없잖아요.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분단을 접했죠. 통일이 뭔가 거창한 건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서 조선족 분들이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분들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맞이하는 일 자체가 통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옆에 있는 사람과 편견 없이 만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요.

   
▲ ⓒ복음과상황 오지은

― 중국에서도 복상을 받으셨는데요.
복상 읽는 시간이 참 좋았어요. 인터넷도 안 되는 곳이라 한국 상황을 잘 모르는데 매달 복상을 통해서 정제된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별히 지난해 4월호가 세월호 1주기 특집이었는데 주원규 씨 소설이 실렸었잖아요. 나만 도망쳐온 것 같은 부채감이 있던 때였는데, 소설을 읽고 수면 아래 있던 감정이 떠오르고 너무 공감돼서 기도가 나올 수 있었어요. 

― 복상이 이건 좀 바꿨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나요? ‘독하게’ 말하셔도 됩니다.
저는 넓고 얕은 지식을 갖고 있어서 읽기가 참 좋은데, 좀 더 심화된 부분을 원하는 분도 있을 것 같아요. 하종강 선생님에 따르면, 줄타기할 때 한쪽으로 기울면 치우친다고 했는데, 정치적인 색깔을 지속적으로 내는 것도 좋지만 반대 소리도 들어봐야 더 탄탄해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물론 저는 ‘사이다’ 마시는 듯 속 시원한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어요. 복음이 꼭 ‘왼쪽’일 필요는 없으니까. ‘복상’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요. 선교 다녀온 이후에 더 좋은 사람을 많이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내 의견에 동의해주는 사람보다도, 의견은 서로 달라도 대화할 수 있어서 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요.

― 복상이 다뤘으면 하는 주제가 있나요?
복상에서 페미니즘은 안 다루나요? 교회 전도사로 일하는 언니랑 이야기하면서 성차별적인 모습이 참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코르셋’이라고 표현되는 것들? 선교단체 사람들도 ‘참자매’라는 표현을 쓰는데 참 갑갑했어요. 이런 얘기가 기독교 안에서 안 나오는 게 이상해요. 제가 생각할 땐 예수님이 가장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인 거 같은데, 자료도 없고 연구도 왠지 많지 않아서요.

― 한국에 와서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나요?
오전엔 아르바이트하고, 오후엔 공부해요. ‘청소년 상담사’ ‘직업 상담사’ 공부하고 있어요. 나름 대학 전공(심리학) 살려서 청소년 진로 교육이나 가치관 교육 쪽으로 일해보고 싶어서요. 자격증을 따면 뭐든 시작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 ⓒ복음과상황 오지은

― ‘흙수저 금수저’ 담론에 관해서 실제로 또래들과 이야기를 하나요?
막막하고 팍팍한 현실에 관해 이야기 자주 해요. 농담처럼 대화를 주고받지만 뼈아픈 현실이죠. 산 입에 거미줄도 칠 수 있겠구나 싶은. 제가 결혼할 때쯤에 이 나라가 안 망하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은 화폐가치 폭락할까봐 저금하는 것도 두려워요. 한편으로는 주변에 이런 상황을 달관해서 돈 모이는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함께 같이 살자는 분들이 주변에 있어서 아직 희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나마 저는 이런 시기를 버티게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요.

― 연애는?
혼자입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성에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천천히 나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남자 사람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맺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천천히 눈이 뜨이게 되는? 인연이 되면 언젠가 만나지 않을까요? 복상 1월호 ‘사람과상황’ 인터뷰에서 환갑에도 결혼하는 분들 보고,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구나 싶어 큰 용기가 되었어요!(웃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
중국에서 통일운동 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든 생각인데요. 우리가 늘 꿈은 꾸지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포기하잖아요. 무관심해지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 될 것에 몸을 바치는 사람에 의해서 통일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이 잊은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이 변혁되는구나 하는. 복상도 그런 잡지가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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